8년 절대권력 … 부패 늪에 빠져 절망으로 추락한 ‘대만의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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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8년 전으로 돌려 보면 천수이볜(陳水扁·57·사진) 전 대만 총통은 대만의 희망이었다. 개혁과 변화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12일 오전 부패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대만 역사상 전직 총통이 구속되기는 처음이다.

타이베이(臺北) 지방법원은 12일 오전 천 전 총통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받아들였다고 대만 연합보(聯合報) 인터넷판이 전했다. 혐의는 직권 남용 및 뇌물 수수, 공유 재산 불법 전용, 돈세탁 등 다섯 가지다. 모두 10억 대만달러(약 408억원)를 세탁해 싱가포르와 미국 등지로 빼돌렸다는 것이다. 최하 5년 징역형이다.

여당인 국민당은 “부패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며 환호했고, 야당인 민진당(民進黨)은 “정치 탄압”이라며 반정부 투쟁 의사를 밝혔다. 대만 정국이 상당히 불안해질 전망이다. 앞서 천 전 총통은 11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수갑을 찬 채 법원으로 가던 중 “정치 검찰”이라고 고성을 지르다 호송 경찰로부터 머리를 맞는 모욕을 당했다.

천 전 총통은 1979년 국민당의 대표적 야당 인사 탄압 사례였던 ‘메이리다오(美麗島)’ 사건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는 국민당 철권정치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여서 국민당에 대한 도전은 파멸을 의미했다. 그래도 그는 이 사건 피의자들을 변호해 ‘민주와 정의를 지키는 대표 인권 변호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대만 최고 명문인 대만대 법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지 5년 만이었다. 그는 81년 타이베이 시의원에 출마해 최다 득표로 당선됐다. 87년 민진당에 입당했고, 94년 실시된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 당선돼 민진당의 차기 총통 후보로 떠올랐다. 시장 재임 기간 중에는 퇴폐 이발소와 매춘 등 8대 퇴폐 업종을 일소하는 등 과감한 행정을 펼쳐 대만의 희망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 덕분에 2000년 국민당을 누르고 총통에 당선됐다. 50여 년 동안 대만을 통치했던 국민당이 그렇게 무너질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는 순수한 대만 출신이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부정 부패 척결을 외쳤다. 집권 1기 4년 동안 대만을 부패 없는 사회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국민당 정부에 만연했던 정경 유착을 과감히 끊었고 모든 선거 자금을 신고토록 했다.

그러나 2004년 어렵게 재집권에 성공한 천 전 총통은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주위에선 끊임없이 부패 스캔들이 터져 나왔다. 집권 8년 동안 밝혀진 친인척 비리만 10여 건에 달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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