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페루 일본대사관저서 11일만에 풀려난 이명호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페루 리마 일본 대사관저에서 인질로 붙잡혀 있다 11일만에 풀려난 재일동포 이명호(李明鎬.32.일본 미쓰비시상사 직원)씨는 28일 밤 11시(현지시간) 본사와의 단독 인터뷰를 갖고 초조했던 억류생활의 심경을 토로했다.
李씨는 수염이 텁수룩한 수척한 모습에 평소 착용하던 콘택트렌즈 대신 안경을 쓴 때문인지 평소 가까이 지내던 교민들조차 긴가민가하는 표정들이었다.다음은 일문일답.
-현재 건강은.
“괜찮다.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인질사건이 일어난당일 밤 상황을 설명해달라.
“테러범들이 들이닥쳤을 때 나는 마당 잔디에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폭탄이 터지고 게릴라들이.머리를 숙이고 우리를 보지 말라'며 총으로 위협한 뒤 대사관저 2층으로 끌고 갔다.그런 뒤게릴라들은 인질들을 한명씩 불러 1시간 정도씩 면 담했다.” -그때의 심정은.
“죽는 줄 알았다..이제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하고 두려움이앞섰다.” -면담할 때 한국인임을 밝히지 않았는가.
“밝혔다.게릴라들은 종이를 나눠주면서 이름.나이.국적.회사명.회사직함등 다섯가지를 물었다.그때 나는 분명히 국적을 한국이라고 밝혔다.” -그러면 게릴라들이 李씨가 한국인임을 알고 있는 것 아닌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게릴라들은 국적에 관계없이 .일본회사직원 누구'식으로 분류했다.그래서 일본회사에 다니는 페루인 직원 2명도 아직 풀려나지 못한 상태다.” -억류생활은 어땠는가.
“처음엔 빵등 비상식량으로 간간이 끼니를 때웠고 방에 갇혀 복도에도 나가지 못해 괴로웠다.바짝 긴장했다.그러나 나중에 적십자에서 음식을 갖고 와 식사 어려움은 없었다.잠도 충분히 잤고 주로 책을 읽으면서 지냈다.” -게릴라들이 위협하지 않았나. “큰 위협은 없었다.게릴라들은.우리는 테러범이 아니다.말만잘 들으면 아무 짓도 안할테니 안심하라'고 말했다.” -왜 풀려났다고 생각하나.
“한국인이기 때문에 풀려난 것은 아니라고 본다.풀려나기 직전일본대사가.10명정도는 더 나갈 수 있겠다'며 일본 지사장들을불러 석방대상을 선별했고 우리 회사 지사장이 나를 다른 사람 모르게 살짝 불러내.당신은 곧 풀려난다'고 귀띔 해 주었다.”-같은 방에 누구와 있었나.
“일본회사 직원 10명과 같이 있었다.특히 알베르토 후지모리대통령의 동생 페드로 후지모리와 같이 있었는데 그는.나를 페드로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게릴라들이 내가 후지모리 동생이란 걸 알게되면 큰일난다'고 안절부절 못했다.” -풀려날 때의 상황은. “여유있게 게릴라들과 악수까지 했다.대사관저에서 나온 뒤 나는 바로 경찰병원으로 옮겨졌다.그러나 여기서 건강검진을 받은것은 아니고 대기중이던 차를 타고 기자들을 따돌린 뒤 일.페루문화회관으로 이동,이원영(李元永)대사를 만난 뒤 페루 숙소로 돌아왔다.미쓰비시 본사에서는 일체 언론과 접촉하지 말라는 지시도 내려졌다.” -이제 남은 인질은 몇명인가.
“일본인 30명을 포함해 70여명 정도다.” -일본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했나.
“아버지(재일사학자 李進熙씨)가 안계셔서 어머니.아내와 통화했다..걱정 많이 끼쳐 죄송하다'고 하니 어머니는.풀려났으니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셨다.아내는 울먹이면서 .매우 걱정했다'고말했다.” -앞으로 계획은.
“다음주초 일본으로 돌아와 보고하라는 본사 지시가 있었다.페루에는 내년 1월에 다시 오게될 것이다.” [리마=김동균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