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論>대중음악 70돌 96년 돌아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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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모든 해의 끝자락에서 회고하면 파란만장하지 않은 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윤심덕의.사의 찬미'의 센세이셔널리즘과 함께 본격적으로 한국의 대중음악사가 개막된지 꼭 70돌이 되는 96시즌은 그 벽두부터 서지원과 김광석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아로새겨졌으며,하나의 수미쌍관(首尾雙關)적인 플롯을 이루는 룰라의.천상유애'와 김민종의.귀천도애'의 표절 파문으로 얼룩졌다.
급기야는 국내 음반유통의 핵심을 이뤄왔던 신나라가.아가동산'스캔들과 동반몰락 조짐을 보이며 기존 시장체계의 재편을 암시하는 것으로 매듭짓고 있다.
올해 대중음악계의 가장 빛나는 꽃봉오리는 1933년 경무부의.레코드 취체령'이래.사전심의'라는 이름으로 옷을 바꿔입으며 상상력을 목졸라왔던 검열의 어두운 연대기가 6월7일을 기해 63년만에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이 고귀한.표현의 자유'는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하관이 끝난 뒤에 허겁지겁 달려온 상주와 같다.
하나의 역사적 분기점을 이루는 이 계기만으론 중층적인 모순으로 에워싸여 있는 한국 대중음악의 심각한 내상을 치유하기엔 역부족이다.
여의도의 공중파 방송은 성공 지상주의의 덫에 걸린 스타시스템과 긴밀한 이해관계를 이루며 음악문화의 독과점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으며 이와 반비례해 비주류의 허약한 존립기반은 날이갈수록 황폐해져 간다.
또 한해의 달력을 재활용 봉투에 던져넣기 전 우리는 빛나는 6월의 앞뒤에 벌어졌던 다음 두가지 슬픈 기억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 하나는 광화문지역에 건립하려던 대중음악 전용공연장계획이 인근 학교장과 학부모들의 진정으로 인해 좌초된 지난 4월의 사건.그것은 이땅의.양식있는'기성세대들이 대중음악을 여전히 청소년 정서를 파괴하는 위험천만한 바이러스로 간주하 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번 되짚어봐야 한다.디제이덕.미녀와 야수'의 저속한 노랫말의 문제점을 들어 현직 음악 프로그램 PD들이 방송자제를 결의하면서 공기(公器)로서 방송의 책임을 제기했던 바로 그 직후,표절 파문 책임을 물어 그들이 화면에서 밀어냈던 룰라가 단 5개월만에 컴백 앨범을 내놓자 경쟁사의 눈치를 보다 일거에 룰라 유치의 이전투구를 벌였던 한편의 희화를.
성급하게 요약한다면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공중파 방송의 비정상적인 독과점체제가 해체되지 않는다면 한국 대중음악은.승자독식(勝者獨食)'의 경마식 논리로부터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
그것은 그 어떤 대중음악 문화의 진흥정책보다,복마전적인 유통의 합리적 개선보다,일상적인 공연문화의 정착보다,대중음악가들의철학적 무장보다 핵심적인 사안이다.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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