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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하버드 대학의 진정한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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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물론 오바마의 성공 요인은 여럿 있겠지만, 비주류였던 오바마가 정치인으로서 주류 사회에 성공적으로 입성할 수 있었던 주요 이유 중의 하나는 컬럼비아와 하버드 대학의 졸업장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버드나 컬럼비아 같은 아이비리그 대학은 전형적인 미국 엘리트 양성 코스이기 때문이다. 특히 흑인의 지적 능력을 의심하는 극단적인 인종주의자들까지도 하버드 법학대학원에서 흑인 최초로 ‘하버드 로(law) 리뷰’ 편집장을 지낸 버락 오바마의 경력 앞에서는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버락 오바마의 부인 미셸 오바마도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대학원에서 공부했다는 사실은 미국 사회의 주류인 백인 중산층을 안심시켰을 것이 틀림없다.

사실 하버드와 프린스턴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명문 사립대학들은 사회의 기존 질서를 뒷받침하며 자기들끼리 기득권을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이 대학 졸업생들은 미국의 금융가와 정치권에 진출해 막강한 인맥을 형성하고, 서로를 도와가며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죽하면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라이시는 “진실을 말한다면, 직장을 구하는 데 있어서 대학 교육이 갖는 진정한 가치는 대학에서 배운 것보다 대학에서 만난 사람과 더 큰 관계가 있다… 아이비리그 대학의 교육이 다른 곳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면, 웅장한 도서관이나 교수들의 능력보다는 대학에서 얻게 되는 인맥 쪽일 것이다.”(『부유한 노예』, 2001)라고까지 말했을까.

그러나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이처럼 사회의 기득권을 보존하는 역할도 하지만, 오바마 부부의 경우에서 보듯이 사회의 약자들이 주류로 편입하는 통로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미국 사회가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건강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하버드로 대표되는 미국 명문 대학들의 진정한 힘은 능력 있는 학생이면 자라온 환경이나 배경에 관계없이 입학시켜 충실하고 다양한 교육을 통해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인물로 키워내는 데에서 나온다. 물론 하버드는 과학 논문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대학이고, 발전기금이 가장 많은 세계 최고의 부자 대학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인 힘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처럼 사회의 용광로 역할을 해내는 힘이 아닐까.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과연 이처럼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을까. 과거에는 우리나라 대학들이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그런대로 ‘개천에서 용(龍) 나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회의 기득권을 공고하게 해줄 뿐, 진정한 밑으로부터의 신분상승을 가능하게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어 소위 명문 사립대학들도 학생선발 기준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 어떻게 하면 강남 학원가의 배치표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해 사교육으로 ‘잘 준비된’ 학생들을 뽑을 수 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또한 어떤 대학은 의치학전문대학원과 법학전문대학원 준비반이 있음을 공공연히 광고하면서, 대학 교육이 오로지 개인의 안락한 삶을 준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다. 물론 그동안 정부의 간섭이 심해서 대학들이 진정한 차별화를 추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인들의 상상력 부족과 책임의식 결여가 일조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들도 이제 대학 교육의 공공성을 의식하고, 학생선발과 교육내용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