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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아주는 자서전 한 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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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발표하는 수업시간이 되면 다들 저마다 조금씩 고민은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위인전에 나오는 역사 속의 인물을 말하곤 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어떨까?

화요일 1교시 국어시간. 이렇게 물었다.
'우리 1반 친구들이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선생님이 참 많이 궁금하구나. 손들고 발표해 보겠니?'

'오바마요!'
'전 김연아 선수요!'
'반기문 총장님을 가장 존경해요.'
'수영선수 박태환이 최고죠!'

아이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이었다.

아이들이 발표하는 인물들은 책에서만 존재했던 위인이 아닌 뉴스나 신문과 같은 매스컴을 통해 매일 같이 만나는 살아있는 위인이었다. 각 분야에 뛰어나고 훌륭한 능력을 가진 실존인물이자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인물들이 주를 이루었다. 필자는 '이순신 장군'과 '유관순 누나' 그리고 '세종대왕'뿐이 모르던 시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던지라 아이들의 대답에 머쓱해졌다.

사실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은 교과공부만 열심히 하고 게임이나 오락에만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 분야와 어른들의 시계가 일컫는 정치와 경제에 관한 관심 또한 예전보다 매우 높아졌다. 내 아이가 유독 특정 유명인에 대해 자주 거론하고 관심을 보인다면 이 때 내 아이에게 선물해 주어야 하는 것이 있다.

위인전을 볼 나이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이순신장군과 같이 고전으로 여겨지는 위인이야기는 1,2학년에 그림책으로 이미 다 읽은 아이들이 대다수이다. 이미 만화나 그림책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를 부모의 권유로 혹은 필독도서이기 때문에 전기문 형식으로 된 위인전으로 다시 읽어야 한다면 아이들은 대충 대충 읽거나 읽는 동안도 위인전 자체를 지겨워하게 된다.

위인전을 읽어야하는 이유가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인생의 목표를 세우는 데 도움을 주고 동시에 인물의 삶의 철학을 재미난 일화를 통해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인성을 함양시키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면 '위인'은 반드시 역사적 인물이고 몇 세기 전에 살았던 인물일 필요는 없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본받을 점이 있는 인물의 이야기도 위인전이 될 수 있다. 기왕이면 아이가 매스컴을 통해 자주 접했거나 평소에 익숙했던 인물에 대한 자서전이라면 아이에게는 고전적인 위인전보다 흥미 있는 독서가 될 것이고 위인전을 읽음으로써 기대되는 효과보다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 아이들에게는 지금 존경하는 인물이 꼭 있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역할모델이 되어주는 인물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역할모델은 유명 인사가 될 수도 있고 부모나 교사, 주위에서 자주 어울리는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아이가 자주 접하고 오랜 시간 어울리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아이의 역할 모델이 되기도 한다. 종종 학부모님들이 특정 아이와 짝을 하게 해달라고 직접 부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생활 태도와 학습 태도가 바른 아이 옆에 앉으면 그렇지 않았던 아이일지라도 옆자리에 앉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활태도가 조금씩 침착해지거나 다소 행동 수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짝이 역할모델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아이에게는 존경하는 인물, 따르고 싶은 인물이 꼭 필요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따라하게 된다. 내 아이에게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면 아이는 그 인물을 따라 해보고 싶을 것이고 그 인물처럼 되고 싶어 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내 아이의 인생의 방향키를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을 통해 찾게 된다. 아이가 잘못된 방향으로 성장할 확률이 낮아지는 것이다.

2. 내 아이에게 동시대 인물의 자서전을 선물하라.

요즘 아이들은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물 보다는 한국을 대표하거나 세계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반기문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UN사무총장 자리에 올랐을 때도 그랬고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자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요즈음도 그렇다. 어쩔 땐 필자보다 우리 반 아이들이 미국 대선과 각 후보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도리어 내게 자세히 설명해줄 때도 있었다.

내 아이가 세계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되길 원한다면 아이가 살고 있는 동시대 지도자의 자서전을 선물하고 내 아이가 예술가로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동시대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훌륭한 기량을 선보이는 같은 분야의 선배 예술가의 자서전이나 에세이 책을 선물해보자. 아이가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과 눈으로 직접 본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이는 이야기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사실 그대로로 믿을 수 있다. 그러므로 초판일이 오래된 위인전집을 선물하는 것보다 아이에게는 훨씬 가치 있을 것이다.

3.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어라.

부모가 아이와 함께 책을 읽어야한다는 것은 이전 칼럼들을 통해서도 누차 강조한 바 있다. 훌륭한 인물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부모와 스승이 따른다. 동시대 위인(偉人)들의 자서전을 읽다보면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부모로서의 교육 철학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부모와 자식이 나란히 앉아 책의 문장 한 줄 한 줄을 읽으면 아이와 책을 통해 대화를 할 수 있다. 부모와 아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함께 반성하고 고쳐야 할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결국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지금의 삶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인생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얻게 된다.

4.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정리하며 읽어라.

'성현이는 장래 희망이 뭐니?'
'외교관이요!'
'외교관이 되기 위해서 성현이가 미리 준비해야 하는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지?'
'…….'

아이들의 장래 희망을 물으면 1학년이든 6학년이든 대답은 거의 비슷비슷하다. 대답 후 이어지는 나의 질문에 답을 못하는 것도 똑같다.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이해가 전혀 없이 결과만을 미리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이 때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자신과 같은 꿈을 이룬 사람이 살아온 과정만큼 유용한 정보가 없다. 자서전을 읽을 때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정리하며 읽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 분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나 에피소드 등을 통해 아이 스스로 세부 계획에 필요한 여러 가지 요소를 찾고 정리할 수 있다. 존경하는 인물의 자서전은 아이의 꿈을 키워주는 청사진이다.

5. 덧붙여, 당선연설도 주의 깊게 읽어라.

오바마 대통령의 자서전과 당선수락연설에 많은 사람들이 한마디씩을 한다. 연설의 내용 이 매우 설득력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의 반기문 사무총장에 관해 쓴 책이 출간 한 달 만에 10만권 이상 팔려나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당선수락연설이 책 마지막에 원문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격언문구를 책상 앞에 적어놓듯이 이 연설문을 내 아이에게 읽히고 싶고 소장하고 싶어서 많은 학부모들이 서점에서 이 책을 구입하였다고 한다. 물론 인터넷 검색을 위해 원문을 찾아 인쇄할 수도 있지만 책을 구입하여 소장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모든 것이 짧게 응축되어 있는 이 원고야말로 첫 백장에 걸친 책 한 권보다 가치가 있다.

교실에서 만나는 우리 아이들은 잘하는 것이 참 많은데도 유독 한 두 가지를 못하면 괴로워한다. 학부모님들도 부족한 점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소외당하거나 놀림거리가 될 것을 늘 걱정하고 고민하신다. 그런 내용과 관련된 상담을 할 때마다 어떻게 말씀드려야할지 난감하다. 사실 지금 부족한 것을 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아이가 잘하는 것을 찾아 계발할 수 있는 기회와 용기에 더 관심을 갖고 아이의 꿈을 찾아 키워주는 것이 우선이다. 아이가 잘하는 것이나 관심 있는 것을 찾아주는 노력이 내 아이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해준다. 이 가을 사랑스러운 내 아이가 꿈을 향해 한걸음 두 걸음 걸어갈 수 있도록 아이의 꿈을 찾아주는 자서전 한 권을 선물해주는 것은 어떨까?

김범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