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이코노믹스>'예스 맨'의 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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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예스 맨'하면 흔히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 나오는 수다쟁이 궁내대신 폴로니우스를 떠올린다.햄릿왕자가 먼산의 구름을 가리키며 모양새가 낙타같지 않느냐고 묻자 폴로니우스는“전체윤곽이영락없는 낙타입니다요”하고 답했다.
다시 햄릿이“내생각에는 족제비 같기도 해”하고 고쳐 말하자 폴로니우스는“돌려서 보면 족제비 같습니다요”하고 맞장구쳤다.햄릿이 다시“아니야 고래같지 않은가”라고 묻자“그렇습죠.너무 고래와 닮았습니다요”하고 말을 고쳤다.그 폴로니우스 는 후일 음모를 꾸미고 커튼 뒤에 숨어있다 햄릿의 칼에 찔려 죽었다.
정보의 시대에 조직의 성패는 정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조직의 장(長)들이 각종 결정을내리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질(質)이다.주변의 예스 맨들에 의해 정보가 왜곡되고 굴절될 경우 올바른 판단이나결정은 불가능해진다.
미국 시카고대(경영대학원)의 캐니스 프렌더개스트가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AER)에 발표한.예스 맨의 이론'(93년 9월호)은 이에 대한 첫 이론적 분석이다.그는 조직내 상하간 정보의 흐름을 한 세트의 수식(數式)으로 시뮬레이션한 다음 그 흐름이 아랫사람들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가져오는가를 추적했다.결론은 3단계로 요약된다.윗사람과 접촉이 잦을수록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들을 말하려는 충동과 성향은 강해진다.예스 맨들이 설칠수록 아랫사람들이 지닌 정보의 가치와 신뢰성은 떨어진다.이는 결과적으로 그 기업및 조직의 의사결정을 보다 중앙집권적 방식으로 되돌려놓는다.
.예스 맨 문화'는 정보 흐름을 왜곡시키고 윗사람들이 최선의결정을 내리는 기회를 빼앗는다.직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도 획일로치닫는다.윗사람과 접촉이 잦은 부서나 동료의 견해에 더 관심을갖고 자신의 견해를 이에 일치시키려 든다.그 결과 창의성은 질식된다.예스 맨 문화를 차단하기 위해 차라리 부서간에 인위적 장벽을 쌓는 편이 낫다는 권고도 그는 서슴지 않는다.
.예스 맨 이론'은 최근들어 두갈래로 주목받고 있다.리엔지니어링으로 중앙집권적 질서가 해체되고 조직의 수평화가 진척되면서예스 맨 문화가 일부 되살아나는 역설적 현상이 그 하나다.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윗사람들이 아랫사람들을 가까이 접하는 기회가 잦아지면서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어떤 것을 좋아하고,무슨 얘기를 듣고싶어하는지를 잘 알아차린다.아랫사람들은 그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다투어 여기에 맞추려 든다.
아랫사람들과 허물없는 접촉이 되레.예스 맨 문화'를 부추긴다.
기업의 단색(單色)획일문화의 온상으로.기업도시'에 대한 반성도 고개를 든다.미국의 포드와 코닝,일본의 히타치시(市)같은 기업도시는 산업혁명의 산물이었다.회사가 종업원을 어버이처럼 돌보고 평생직장의 유대속에 종업원들을 기업가족의 테 두리로 묶어놓았다.구성원들의 개성과 자발적 창의가 생명인 정보화 산업시대에.기업도시의 죽음'도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다.단색.획일문화로부터의 탈출이다.
반대의견이 활발하지 않고 일사불란한 조직은 효율적이기는 커녕속으로 곪고 있다는 주요한 반증이다.국가경영 역시 예외일리 없다.죽음을 무릅쓰고.전하 아니되옵니다'를 읍하던 옛 선현들의 기개가 새삼 돋보인다.
(경제담당국장) 변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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