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노스·레몽 크노의 난해한 시 ‘간장공장 공장장은 … ’식 쉽게 번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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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대혁명 이후 프랑스 문화는 유럽 문화를 선도했습니다. 프랑스 현대시는 서구 현대시와 문학을 선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아라공 등 초현실주의 시인의 모험이 20세기 초 우리나라 이상 등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도 보이고요. 그런 과정에서 (프랑스 현대시가) 어렵다는 인식이 생긴 것도 사실이지요.”

연세대 불어불문학과 이진성(63·사진) 교수가 『프랑스 현대시』(아카넷)를 내놓은 이유다. 그는 “전세계에서 거의 동시 개봉되는 영화와 달리 지역적, 시간적 편차가 큰 문학의 괴리를 불문학자로서 조금이라도 좁혀보고 싶었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600쪽에 육박하는 책의 집필에만 15년이 걸렸다. 상징주의 거장인 말라르메가 사망한 1898년 이후 시작된 프랑스 현대시 100년의 흐름을 대표 시인 및 작품, 문파 등의 구분을 통해 꼼꼼하게 정리했다. 그는 “현대는 기독교적 이상과 신이 사라진 시대”라 설명했다. “흔히 현대라 하면 인간 소외나 가치 상실 등만 역설하지요. 하지만 신이 지배하는 단조로운 문화에서 벗어나 문학에서도 다양한 형식이 부각된 것은 아주 의미있는 일입니다.”

데스노스나 레몽 크노처럼 프랑스어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한 시인들의 작품을 번역하는 게 특히 힘들었다. “가령 Marie(마리)란 이름을 amier(사랑하다)로 바꾸는 ‘철자 바꾸기 놀이’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책에서 이런 특징을 ‘간장 공장 공장장’으로 대표되는 우리말 언어유희에 빗대 설명했다. 문학 전공자뿐 아니라 여느 ‘문학 독자’까지 배려한 글쓰기다. 이 교수는 “인문학이 축소되고 있는 건 쉽게 풀어 널리 알려야 한다는 학자의 의식이 위축된 탓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광고 카피에 시구가 쓰이거나 시 창작 기법이 활용되는 점을 들며 프랑스 현대시의 실용적 면모도 짚어냈다.

“서구문화의 기본은 문학예술 전통입니다. 이런 문학 전통에서 배워와서 응용해야 합니다. 문화 콘텐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응용의 대상이 있어야지요. 프랑스 현대시의 다양한 면모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겁니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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