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읽기>SBS '형제의 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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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너무나 가슴 아팠던 과거를 의식의 수면으로 다시 끄집어내는 걸 유쾌하게 즐기는 사람은 물론 없다.
이미 그 상처들을 정리하고 극복해냈다고 믿고 있어도,속곳속 뱀이 여린 속살을 노리듯 고통스런 기억들이 언제 우리 무의식의깊은 곳을 해코지할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게 불쾌한 고통의 재경험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때로 부정(Denial)이란 방어기제를 쓴다.
.내게 그런 어두운 과거는 없다'라고 애써 믿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곤란한 추억들을 되씹으며 현재를 디딜힘을 다시 얻기도 한다.
일본의 동화.우동 한 그릇'이나 동화 .몽실언니'가 아마 그런 유가 아닐까.
.형제의 강'도 과거의 힘든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똑똑하고 이기적인 장남 .준수'는 자신의 가난한 가족을 부끄러워 한다.준수에게 가족이란 무의식의 어두운 그림자 같은 존재다. 그들의 희생을 딛고 출세하게 될 터이지만 그런 사랑이 부담스러워 그들과의 끈을 끊어버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는 밝은.나'를 자유롭게 두지 않는다. 그림자로부터 도망가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나는 자꾸 망가질 뿐이다.
시몬 베유.오드리 헵번같이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 곁으로 가까이 다가서는 이들은 많지 않다.똑똑한 준수에 대한 부모의 맹목적인 기대 때문에 상대적으로 잡초처럼 크는 준식.준우가 앞으로 어떤 심리적 방어기제를 선 택해 나름대로 성숙의 과정을 견뎌낼지도 자못 궁금하다.
.형제의 강'을 쓰는 작가는 우리 시대에 대해 꽤나 할 말이많은 사람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준수나 준수아버지 같은 남자들도 권위적 가부장제의큰 피해자일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면 지난 몇년간 동어반복만 계속하는 사이비 페미니즘의 상업주의에 대한 시청자들의 염증을 치료해줄 것도 같다.
준수와 준식의 갈등을 형제간 경쟁(Sibling Rivalry)으로만 파악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고유한 문화적 갈등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한 감상법이다.
우리가 융통성없이 붙들고 있던 적장자 상속제도 아래서 장남에대한 지나친 과보호와 편애가 가족들의 사랑을 어떻게 일그러지게했는지 지켜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주제는 준수란 인물이 표상하는.엘리트주의'와 준식이 표현하는.대중'의 대립이다. 지난 수십년간 지속되었던 파워 엘리트들의 심리와 그들에 대한 냉정한 반성적 시각이 한 평범한 인물의 가족사를 더듬어봄으로써 가능할듯도 싶다.
.준수'란 인물이 상징하는 뛰어난 머리와 차가운 이성의 권력지향적 지식인 계층은 지난 수십년간 대중들이 그들에게 보내는 짝사랑을 솔직히 이해하지 못하며 살았던 건 아닐까.
물론 남다른 노력으로 사회의 상층부에 진입한 점을 통째로 폄하해버릴 수는 없겠지만,그만큼 그들이 성공하기까지 어둠속의 역할을 자처하며 남몰래 뒷바라지한 이들의 상대적 소외감을 간과해서도 안될 것이다.
소수 지도자들의 탁월한 리더십을 강조하기보다 주변적 인물과 소소한 사건들의 가치를 재발견해내려는 요즘 같은 시기에 서로의오해를 풀고 따뜻한 가족공동체 정신을 회복하는데.형제의 강'이라는 드라마도 한몫해낼 수 있기 바란다.
(신경 정신과 의사) 이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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