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김아름] 겸따마다… 그리고 겸따마"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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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적인 것이지만 정작 그 고마움이나 중요함은 잘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숨쉬는 공기와 말하는 언어가 있죠. 그 중에서도 언어는 중요한 만큼 다루기 힘든 존재인 것 같습니다.

통상적으로 전 세계언어는 교착어, 고립어, 굴절어로 나뉘는데요, 그 중 한국어는 일본어, 터키어와 함께 교착어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고립어의 대표로는 중국어가, 굴절어의 대표로는 영어가 있습니다.

최근에 새롭게 들리는 단어중에 " 겸따마다" 라는 것이 있더군요. "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자" 라는 말을 줄여서 표현한 단어라고 합니다. 처음에 이 단어를 접했을때 "아나바다" (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 같은 경제에 관련된 새로운 캠페인 정도라고 생각했었는데 "겸따마다" 에는 "아나바다" 와는 다른 사회적 배경이 있었습니다.

"겸따마다" 의 주체는 한국, 대상은 중국으로, 중국을 대하는 한국의 태도변화를 위해 전개된 운동이더군요. 그 시작이 어디서 부터인지.. 주체가 누구인지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그 보다 중요한건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라고 생각됩니다.

"겸따마다" 가 언론에 자주 등장한건 이번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해서 였습니다. 여자 양궁선수들의 경기 이후로 "반한감정" 이라는 단어와 함께 자주 등장하여 잠시 잠잠했던 양국민들의 마음을 다시 뒤집어 놓았습니다.

얼마전 중국의 국제선구도보(國際先驅導報)에서 1만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중국인이 좋아하지 않는 나라" 에 한국이 40 %를 차지, 1위를 차지했습니다. (2위는 일본으로 30%를 차지했습니다. )

"1위(!)" 를 차지한 원동력(?) 으론 베이징올림픽의 여자양궁 금메달전, 중국 사천 대지진 악플사건, 올림픽 성화봉송 사건, 한국의 국보 남대문 화재 악플사건 등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잊을만 하면 꼭 한번씩 발생하는 이런 큰 사건들 때문에 양국민들의 감정은 점점 곪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단발성 사건외에도 현재진행형으로 양국간의 " 원조 논쟁" 역시 해결되지 않은체 양국민들의 감정적인 배경으로 한 역할 톡톡히(!) 하고 있죠 ..."겸따마다" 운동 역시 이런 감정적 상처들이 곪아 터지기 전에 치료를 해야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대책인것 같습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만 ....^^::)

"겸따마다" 운동의 열쇠는 " 말" 에 있습니다.

끊이지 않는 " 원조논쟁" , 역사문제 등이 나타나면 그 진위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하는데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내세워 주제와는 상관없는 개인적 생각 즉, 악플을 작성하고 , 그 악플들이 인터넷을 통해 양국국민들에게 번역되면서 또 다시 주제와는 상관없는 감정싸움을 하게 되는 악순환을 되풀이 합니다.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전해지는 과정중에 근거없는 말들이 덧붙여져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선 " 펠프스는 한국인" 이라고 한국인들이 주장한다는 기사도 있더군요 ... 말이란게 참 무서운 놈이여서 잘못 전해지면 그 영향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런 속성을 간과한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속 생각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개인블로그에서) 언급하고, 그 말이 발단이 되어 결국은 국가적인 문제로 까지 치닫게 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개인과 국가의 " 말" 들이 오가는 사회에서 정확한 조율을 하는것이 언론의 역할중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 요즘 언론, 특히 인터넷 기사를 보면 자신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최근 한중간에 잦아지는 혐한류- 반중감정의 언론기사들을 보면 확인되지 않은 과도한 '민족 감정' 이 개입된 언론보도가 야기할 수 있는 최악의 사례로 1931년 에 발생한 만보산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삼성보 동포 수난 갈수록 심해져 / 이백여명 또 피습당해 / 완성된 수로공사를 전부 파괴 / 중국농민이 대거 폭행”

1931년 7월 2일 심야에 발행된 조선일보 호외의 제목입니다. 사실 만주 삼성보에서 한국인 동포의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오보였죠. 하지만 같은날 자정 호외를 접하고 분노한 한국인들은 인천을 시작으로 중국인이 경영하는 떡집, 이발소에 돌을 던지는 중국인 배척 폭동을 시작합니다. 반중국인 폭동은 이후 평양등 전국 각지에서 400여회 이상 벌어집니다. 폭동 결과 100 여명 이상의 중국인이 사망했고 200 여명 이상의 중국인 화교가 부상당하는 참사가 벌어집니다. 폭동에 참가한 한국인 1800 여명이 검거되었습니다. 참담한 한중 간의 충돌이었습니다.

폭동 직전인 1930년말 한국에 거주하던 화교의 총인구는 6만9000여명이었으나, 반중국인 폭동과 뒤이은 1931년 9월 18일 일제의 만주침략 여파로 중국으로의 귀환자가 속출, 1931년 말에는 5만6000여명, 1933년 말에는 3만7000여명으로 급감합니다.

당시 사건의 발단은 만주 장춘에 가까운 만보산 지역에서 발생한 한국인 농민과 중국인 농민 사이에 농수로 건설과 저지를 둘러싼 대립이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일본의 정보기관이 언론의 오보를 유도했고, 반중국인 폭동 배후에도 깊숙히 개입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만주, 더 나아가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의 야심이 초래한 사건이었지만 한중 양국민 사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사건이었습니다.

만보산사건의 촛점을 역사적 배경이 아닌 "언론의 오보" 에 맞추어 생각해 본다면 "말 한마디" 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속담에 "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 "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전의 천냥 빚이면 사람 목숨도 구한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큰 가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말 한마디에 사람 목숨도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바르게 말하고 , 진실하게 전달한다면 언론의 오보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입니다. 물론 오보로 인한 결과도 마찬가지겠지요.

양국민간의 곪아가는 감정을 치유하기 위해서 시작한 치료 " 겸따마다" 운동... 그 치유의 백신은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의 말 한마디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아야 할때입니다. 요즘 시각으로 다시 바꿔 말하면 머리와 마음의 생각들을 손을 통해 표현하는 " 글" 도 해당되겠죠 ^^

1992년 한중수교 이후 16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양국 관계는 정치, 경제, 문화 거의 모든 방면에서 빠르게 가까워졌습니다. 빠른 속도로 가까워진 까닭에 서로를 깊이 알 기회가 적었다고 생각됩니다. 중국은 최근 경제 운용방식을 바꿨습니다. 속도보다는 질을 앞세우겠다는 방식으로요.. 한중관계의 앞날에도 함의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서로를 빠르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받아들인 것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가며 버릴것은 버리고 받아들일 것은 흡수해야 할 때입니다. "겸따마다" 의 방식으로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준비한다면 요즘 유행하는 최고의 "처세술" 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김아름 북경어언대학교 석사연구생

For reference
* "한국인 펠프스 " 기사의 예는 기사의 날조성에 대한 한 예일 뿐입니다.
** 1931발생한 만보산 사건에 관한 기사는 중앙일보 조인스의 신경진씨 개인블로그에서 참고하였습니다.
*** "겸따마다" 의 중국명칭은 " 謙虚和温情運動 " (겸화와 온정 운동)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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