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30년 달라진 풍속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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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호 20면

1978년 12월 22일. 중국 관영매체인 인민일보는 1면 톱기사로 ‘중국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 공보(公報)’를 실었다. 모든 신문과 TV는 새로운 권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연설 장면을 소개했다.(위 사진)
중국이 계급투쟁과 계획경제의 굴레를 벗고 용틀임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노선을 따르는 보수파와의 권력투쟁 속에서 개혁·개방 노선이라는 필생의 승부수를 던졌다.

중국을 잘 아는 사람들은 종종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이 없었다면 아시아의 네 마리 용(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를 지칭하는 말)은 없었을 것이다.” 덩샤오핑·류사오치(劉少奇) 같은 주자파(走資派)가 60년대 후반부터 실용주의 노선을 펼쳤다면 아시아의 역사, 세계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대륙은 문화대혁명의 광풍 속에서 10년간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렸다.

이제 세계질서는 중국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중국은 30년 동안 외국인 직접투자를 7700억 달러나 끌어들여 ‘세계의 공장’으로 변신했다. ‘차이나 파워’는 한반도에도 상수(常數)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중국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지난해 478만 명이 중국을 방문했지만 대중 시각은 여전히 피상적이다. 그들의 생활수준은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 같은 지역의 경쟁력만 놓고 본다면 이미 한국의 도시들을 추월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중국공산당이 개혁.개방 노선을 결의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78년 12월 22일자 인민일보. 신화통신

이번 스페셜 리포트는 중국인들의 달라진 삶과 풍속도를 주제로 삼았다. ‘100년 대계’라는 교육을 필두로 유행어·음식·패션·영화·결혼·재테크 등 실생활을 반영하는 분야들을 짚어 보았다.

분야마다 상전벽해를 느끼게 만드는 장면들이 잇따른다. 특히 중국은 경쟁과 효율의 원칙 아래 다양한 교육 실험을 진행 중이다. 중국이 거둔 30년 성공을 자극제로 삼아 다가올 30년 동안 한국이 또 한번 분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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