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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닭을 오른팔로, ‘냉혹한 실용주의’ 용인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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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호 04면

미국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오른편 가운데)이 7일 시카고에서 경제 자문단과 회의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I know what I’m good at. I know what I’m not good at. I know what I know. I know what I don’t know.”(나는 내가 잘하는 것과 잘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고 있다.)

이매뉴얼 선택한 오바마 정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5년 전 일리노이주(州) 상원의원이었을 때 피트 루즈에게 한 말이다. 루즈는 현재 정권인수위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당시엔 톰 대슐 전 민주당 상원의원을 10년간 보좌한 특급 참모였다. 오바마는 왜 이런 발언을 했을까. 오바마는 당시 연방 상원의원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이를 위해 루즈에게 함께 일해 보자고 제의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워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램 이매뉴얼 비서실장 내정자

4일 대선에서 역사적 승리를 거둔 이틀 뒤 오바마는 자신의 수족 역할을 할 자리인 백악관 비서실장에 램 이매뉴얼(49) 일리노이주 하원의원을 지명했다. 이매뉴얼은 워싱턴 정치판에서 악명 높은 ‘싸움닭’으로 소문났다. 차분하고 신중하고 내면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 오바마와 딴판이다. 오바마의 측근들은 오바마가 자신과 반대되는 기질을 이매뉴얼 카드로 보완하려 했다고 분석한다. 이는 오바마가 사람을 쓰는 방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오바마는 남들이 보기 싫어하는 현실을 직시하는 단련된 정치인”(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이라는 평가도 그의 용인술과 관련돼 있다.

이매뉴얼 비서실장 내정자는 유대인이다. 노스웨스턴대에서 ‘스피치와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기 전엔 뉴욕 사라 로런스 칼리지에서 발레를 배우기도 했다. 시카고의 집에선 계단을 오르내리며 어머니와 춤을 췄다고 한다. 미 언론들은 연일 이매뉴얼의 프로필을 쏟아낸다. ‘킬러 전략가’ ‘논스톱 펀드 레이저’ ‘입이 험한 성난 불독’이란 표현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가 즐겨 쓰는 말 중엔 신문에 담기 어려운 F자로 시작되는 욕설도 있다. 유리잔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남의 감정을 배려하지도 않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한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AP통신은 ‘이매뉴얼은 실용주의에 기반을 둔 효율적 일처리에 평판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모금의 귀재다. 1992년 대선 당시 빌 클린턴 선거 캠프에 합류해 저돌적으로 돈을 빨아들이는 바람에 경쟁 후보들이 자금 부족을 이유로 줄사퇴를 해야 했다. 기행(奇行)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은 일일이 손꼽기 힘들 정도다. 96년 대선 직후 축하 만찬장에서는 스테이크를 자르는 칼을 들고 정적들의 이름을 부르며 “죽어(Dead), 죽어, 죽어”라고 외친 일도 있다. 그 뒤 ‘램보’란 무시무시한 별명이 붙었다. 자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여론조사원(과거의 동료란 설도 있다)에게 썩은 생선을 우편물로 보냈다고 한다.

2005년 연방 하원의원으로 민주당 선거위원회 의장을 맡은 뒤 그는 “승리가 모든 것(Winning is everything)”이라는 기치 아래 선거자금 모금과 민주당의 의회 장악을 위해 올인했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상대에게 새벽 4시에 전화해 모금을 채근하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15분 단위로 계속 전화했다고 한다. 기부금이 적으면 그 자리에서 면박을 주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현역 공화당 의원이 있는 지역구에 도전할 정치인을 발굴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매번 대성공을 거둬 2006년 민주당이 중간선거에 승리하는 데 최대 공로를 세웠다. 공화당 하원의원 레이 라우드(일리노이주)조차 “램은 민주당의 복덩이(golden boy)”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매뉴얼의 아버지는 무장 시오니스트 운동가였다. 어머니는 거리 시위에 참가할 때 어린 아들 셋을 데리고 나가는 맹렬 여성이었다. TV드라마 ‘웨스트 윙’에 등장하는 터프한 실용주의자 조시 라이먼 백악관 비서실 차장은 바로 이매뉴얼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다. 그는 90년대 후반 3년간 투자은행에서 일하면서 18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오바마는 그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매뉴얼보다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은 없다. 새 행정부가 직면할 도전적 이슈들에 대해 깊은 안목을 갖추었다.” 백악관과 의회가 대립할 때 오바마를 위해 이빨을 드러내고 싸울 수 있는 사람, 백악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화당과도 ‘작전’할 수 있는 사람이 이매뉴얼이다.

‘흑인’ 오바마의 승리를 통해 전 세계는 아메리칸 드림이 살아 있음을 보았다. 그가 내세운 꿈·희망·변화라는 구호는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오바마의 정치 스타일은 철저한 현실주의와 실용적 면모로 무장돼 있다. 장훈 중앙대 교수는 “그의 정치 스타일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비슷하다”고 했다. 평정심을 잃지 않는 표정 뒤에서 노회하게 정치적 계산을 하는 스타일이다. ‘여우와 사자’의 두 얼굴을 가졌다. 때론 냉혹한 마키아벨리스트의 면모도 엿보인다. 미국 언론들은 오바마가 처한 상황을 루스벨트의 대공황 때와 비교한다. “오바마는 루스벨트가 될 수 있을까”(파리드 자카리아 뉴스위크 편집장)란 화두를 던진다.

대공황 당시 15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산업 생산은 29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29년 9월 380.10이던 다우존스 주가지수는 41.22까지 떨어졌다.

오바마 당선인이 7일(현지시간) 대통령 당선 뒤 처음 한 기자회견에서 그는 현실주의자임을 새삼 느끼게 했다. 회견 자리엔 자동차 관련 기업이 몰려 있는 미시간주의 제니퍼 그랜홀름 주지사를 불렀다. 신성호 교수는 “자신에게 표를 던진 지지층을 향해 심리적 안정을 주는 고도의 정치행위”라고 말했다. 경제난 해결을 기대하고 표를 찍은 백인 노동자 계층을 의식했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이날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분명히 선을 그었다. 회견 모두발언에서 미 국민이 겪고 있는 고통을 열거한 그는 “그러나 내년 1월 20일까지는 현 정부가 유일한 정부”라고 강조했다. 금융위기가 단기간에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게 뻔한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와 일정하게 거리를 둔 채 ‘비판적 협력’ 입장을 견지하겠다는 것이다. 향후 집권 기간 동안 ‘공동 책임론’에 휘말릴 소지를 없애겠다는 의도다. 80년 전 루스벨트도 그랬다. 그는 정권인수위에서 취임 직후 내놓을 개혁 조치들에 공을 들이면서도 ‘경제를 위해 협력하자’는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했다.
오바마는 ‘언제 각료를 발표할 것이냐’는 질문에 “신중한 서두름(deliberate haste)으로 움직이고 싶다”고 말했다. 신중하게 계획하되 과감하게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발언이다. 로마의 첫 번째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말한 “festina lente(천천히 빠르게)”에서 유래한 정치적 수사(修辭)다. 에이브러햄 링컨도 ‘노예를 즉각 해방할 것이냐’는 질문에 ‘festina lente’라고 답한 적이 있다.

장훈 교수는 대외적 현실주의도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오바마는 철저하게 미국의 국익에 따라 미국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인 다수가 원하는 대로 다자주의 외교에 기반한 ‘절제된 개입정책’을 보일 것이며 이런 스타일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위기에 몰린 새 정책이 연착륙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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