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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흑인 대통령, F1 챔피언 해밀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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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호 14면

마이 페어 레이디(My Fare Lady).
영국 런던의 길거리, 어눌한 말투와 남루한 옷차림으로 꽃을 파는 처녀가 있었다. 상류층 두 남자가 우연히 이 여인과 마주친다. 두 사람은 호기 어린 내기를 건다. 하층의 여인을 품격 있는 귀부인으로 변화시킬 수 있느냐는 내기.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쳐 처녀는 귀족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두 남자 중 하나는 이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상류층을 사랑에 빠지게 했다는 것, 그건 ‘흉내’를 넘어 ‘변신의 완성’을 의미했다. 영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 영화에 F1의 드라마가 담겨 있다.
데뷔 2년 만에 F1 시즌 챔피언에 오른 영국인 루이스 해밀턴(23·맥라렌 메르세데스 F1팀). 그는 최초의 흑인 F1 드라이버다. ‘최초’는 2년 새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1995년, 유로 오토스포츠 시상식장. 영국 F1의 영웅 론 데니스(60) 맥라렌 F1팀 회장 앞에 꼬마 녀석 하나가 나타났다. 얼굴이 검어 맑은 눈이 도드라졌다. 꼬마는 “사인해 주세요”라며 회장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회장은 “몇 살이냐”고 물었고, 꼬마는 “열 살”이라고 답했다. 회장은 “9년 안에 다시 연락하라”고 타이르듯 말했다.

97년, 꼬마는 유럽 카트 시리즈(주니어 자동차 경주대회)를 평정했다. 꼬마는 ‘맥라렌 드라이버 지원 프로그램’에 입성했다. F1으로 가는 엘리트 코스로 들어선 것이다. 데니스 회장은 이 프로그램을 ‘마이 페어 레이디’라 부른다. 영화의 원작이 된 뮤지컬의 제목은 ‘피그말리온’이다. 인간의 영원한 욕망인 ‘변신’에 대한 이야기다.

데니스 회장은 80년대 아일톤 세나(브라질) 등 세기의 수퍼스타와 함께 F1을 주름잡던 드라이버였다. 선수에서 시작해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그는 F1의 대가로 자리 잡았다. 그는 F1의 최상류층이다. 재산만 9000만 파운드(약 1890억원)가 넘는다. 그리고 그가 길러낸 검은 꼬마는 ‘마이 페어 레이디 프로그램’을 통해 수퍼스타로 성장했다.

해밀턴은 이민자의 손자다. 1950년, 해밀턴의 할아버지는 캐리비언의 남쪽 작은 섬나라 그레나다를 떠나 영국에 정착했다. 할아버지는 철도 노동자로 일하며 가족을 먹여 살렸다. 그의 성실함으로 아버지 앤서니는 제도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앤서니는 정보기술(IT)과 관련된 조그만 사업을 했다. 이민자 부자가 2대에 걸쳐 만든 물적 토대 위에서 해밀턴은 성장했다.

어릴 적 해밀턴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또래보다 일찍 걷기 시작했고, 빨리 뛰었다. 앤서니는 해밀턴이 8세 되던 해 카트를 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 만에 주니어 경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해밀턴은 95년 오토스포츠 시상식에까지 초대받을 수 있었다. 바로 이 자리에서 데니스 회장을 만난 것이다.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주인공은 오드리 햅번이었다. 64년, 전성기 시절 햅번. 그녀처럼 해밀턴도 ‘주머니의 송곳’같이 탁월했다. 재능은 숨길 수 없었고, 조금씩 다듬을수록 더 빛났다. 영국의 상류층이 햅번을 변화시켰듯 해밀턴도 변화에 성공했다. 그의 연간 수입은 줄잡아 4000만 달러가 넘는다. 영화 속 햅번이 그랬듯 변신의 완성은 ‘영국이 해밀턴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의 컨설팅 회사 조너 스펜서는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와 같이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될 만한 스타감은 현재 해밀턴뿐”이라고 분석했다. 유럽스폰서십연맹 회장인 영국의 나이젤 커리는 “해밀턴은 앞으로 15년 동안 10억 파운드를 벌 것이다. 이는 영국이 낳은 스타 레녹스 루이스(복싱·1억3000만 달러)나 데이비드 베컴(축구·갤럭시와 5년 2억5000만 달러 계약)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영국에서 F1 대회가 열리면 암표가 활개를 치고 시청률은 치솟는다.

‘마이 페어 레이디’의 신화와 ‘블랙’의 결합은 이미 낯익은 이야기다. 흑인 최초로 미국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 그는 케냐 이민자 3세다. 해밀턴의 할아버지가 그랬듯 오바마의 할아버지도 더 나은 삶을 찾아 바다를 건넜을 것이다. 오바마는 하버드 로스쿨을 나왔고, 상원의원을 거쳤다. 가을의 막바지, 오바마는 ‘검은색 혁명’을 이루며 미국 230년 역사를 다시 썼다. 그보다 며칠 앞서 영국 국적의 흑인 해밀턴은 ‘백인의 견고한 성 F1’의 새 황제가 됐다.

타이거 우즈(골프), 제임스 블레이크(테니스), 데브라 토머스(피겨 스케이팅). 이들은 ‘백인 중산층의 고급 스포츠’라 불리던 골프, 테니스, 겨울 스포츠에서 세계 정상에 오른 흑인이다. 서구 사회는 ‘백인 주류 스포츠에서의 흑인 스타’가 엄청난 마케팅 수단이 된다는 사실에 눈떴다. F1은 오래도록 흑인 드라이버의 탄생을 꿈꿔 왔다. ‘백인 중산층 이상’이라는 F1의 카테고리가 깨진다는 것은 ‘F1이 세계적 스포츠로 발돋움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체된 성장’을 극복하기 위해 F1은 더 색다르고, 더 재능 있고, 더 주목할 만한 스타가 필요했다. 그는 스타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지니고 있다. 젊음(가능성)·실력·외모, 그리고 지금껏 어떤 F1 드라이버도 가지지 못한 독특함(exotic & unique)까지.

그러나 해밀턴의 우승을 블랙의 승리로만 정의 내릴 수 없다. 해밀턴은 하이브리드(혼종)다. 아프리카와 캐리비언의 피가 흐르며, 영국 문화의 세례를 받았다. 해밀턴의 애칭은 ‘F1의 타이거 우즈’다. 우즈도 아프리카와 태국과 미국이 섞인 하이브리드다. 미국의 새 대통령 오바마도 혼종이다. ‘섞여 있는 것’, 우리는 21세기에 들어 ‘혼종’의 위대함을 목격하고 있다. 혼종은 스포츠·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와 학문에서도 이미 지향해야 할 가치가 돼 있다. 최고경영자들은 인문학의 가치를 발견하고, 분과됐던 학문은 이종교배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우즈·오바마가 그렇듯 해밀턴은 20세기까지 견고히 지켜졌던 ‘순혈주의의 신화’를 깨는 주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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