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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우] 중국 ‘개혁개방 30주년’ 을 바라보는 한 시각

중앙일보

입력

올 2008년은 중국인들에게 더욱 커다란 의미로 기억될 수 있는 한 해인 것으로 믿어진다. ‘신중국(新中國)’ 건설 후 수 십 년간에 걸친 새로운 시도와 변화의 끝에 개혁과 개방에 착수하며 국가 재건에 나선 지 30년이 흘렀고, 이제 어느덧 건국 60주년을 앞두고 있다.

중국은 그 취한 이름과 내건 기치의 서로 다름에 관계 없이 전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며, 이는 비단 근 현대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은, 지구상 국제관계사가 전개되기 시작한 이래 거의 모든 시점과 지역에 걸친 공통적 현상으로서 줄곧 인류 역사의 중심 혹은 그 주변에서 일정 이상의 역할 내지 연기를 해왔다. 그리고 이제 가까이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외교적 노력에 있어서의 주도국으로서 글로벌하게는 최근의 국제금융위기 상황에서 선진 부국들과 힘을 합치며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경제력도 보유하게 된 바, 그 밑바탕에 지난 기간 ‘개혁개방’ 을 통한 국내 외적 성취가 위치하고 있음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바로 그래서인지 그 의미를 찾으며 기리는 각종 행사들이 중국 내에서 진행되는 것은 물론 언필칭 “순치관계(脣齒關係)” 를 형성하고 있다는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학술대회 등의 형식을 빌어 심도 있게 분석되며 연구되고 있다.

문득 각도를 바꿔보면 이번 가을은 내가 중국과 맺은 인연에 있어서도 여러 모로 의미를 둘 수 있을 것 같다. 대학 어문학계열 1학년과정을 마무리하고 전공을 결정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여타 외국어들을 물리치고 과감히 중국어문학을 선택한 시점이자 대국 중국이 대내적 개혁과 대외적 개방의 길에 들어선 시기이며, 국교가 없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중국 땅을 처음 밟은 지 만 20주년이 되는 때이다. 졸업 후 남들처럼 직장을 구해야 할 처지에서 보통의 경우와는 다른 용기를 내는 게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었으나 오히려 뜻있는 주위사람들로부터 적지 않은 격려도 받을 수 있었으며, 그럼에도 한동안은 학우들 간 ‘소개팅’ 에서조차 순번이 뒤처졌던 아스라한 기억도 있으나, 훗날 ‘중국 붐’ 이 불어 닥친 덕에 좁은 취업 문을 비교적 여유 있게 통과할 수 있었으니 나 또한 그를 가능케 한 개혁개방의 수혜자들 중 하나였음을 부인할 수만은 없다.

중국 대륙에 첫 발을 디딘 1988년 당시 나는 국내 모 전자회사의 IT 분야 미주(美洲)시장 수출담당자였으나, 잠재적인 거대 시장이라 일컬어지던 중국에서 처음 개최되는 관련 국제전시회에 공식 참가하며 약 2주간 활약했다. 직항로가 없었기에 홍콩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등 모두 7시간여의 여정을 거친 끝에 도착한 수도 베이징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초창기에 중국 땅을 밟아보는 경우인 내게 일정 수준 이상의 흥분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지금보다 인간적이고 안전했던 것으로 회상되기도 하는 그 시절 마주친 대부분의 중국 인민들은 폐허를 딛고 일어나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남조선(南朝鮮)손님’ 을 다소의 호기심도 보여가며 따뜻이 맞아줬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 거대한 대륙에 개혁과 개방이 제대로 뿌리내리기엔 10년의 세월이 부족해서였는지 – 가까이서 본 베이징의 모습은 비행기 옆자리에 앉았던 일본 상사주재원의 말마따나 ‘시골동네’ 같기도 했으며, 여러 측면에서 평소 막연하게나마 갖고 있던 기대에 크게 못 미친 채 동떨어져 있었다.

그로부터 불과 몇 년 후 남순강화(南巡講話)를 계기로 본궤도에 오른 중국의 발전은 나라 전체의 면모를 일신시켰는데, 이는 과거 한국 상사주재원으로서 서방 선진국 무역대표부의 프로젝트매니저로서 주재하는 동안과 귀국 후 매년 여러 차례 씩 들르며 40여 개 도시를 방문하는 가운데 직접 새록새록 확인해 오는 엄연한 현실이다. 사회 곳곳에 형성된 개방화、선진화에 대한 굳은 의지와 실천노력은 이미 오래 전에 돌이킬 수 없는 조류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이며,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 이라 불릴 만한 생산력과 구매력은 물론 IT、관광 등 분야에 있어서의 고도화、소프트화를 이뤄내는 역량을 보이며 국제사회에서 활약하는 중국인들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가운데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문화적으로도 보다 다채로워지며 그 깊이와 향기를 더해가고 있다.

무릇 한 나라를 평가하고 묘사하는 데에는 신중해야겠고, 더욱이 세계 최대의 인구가 운집한 중국이 지난 수 십 년간 개혁개방을 실행하며 이룬 것을 간결히 완벽하게 요약하기란 불가능한 일인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위의 거시적 면모를 벗어나 살펴볼 수 있는 중국사회의 측면들로서는 대체로 ‘삶의 질 향상’, ‘민주화’、‘문화적 소양 제고’와 ‘전통적 미풍양속 복원’ 등이 있을 것으로서 이들은 모두 경제적 여유 내지 풍요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과거 주위사람들과 중국 얘기를 하다 보면 의외로 많이 들먹여지는 것이 ‘택시(와 기사)’ 였다. 그 내용들은 위생상황、서비스태도、바가지요금에서부터 때론 신변위험에 이르기까지 주로 유쾌하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아직도 중국 전체 직업 중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결코 낮지 않을 직종에서 벌어지는 일 치곤 몹시 유감스럽기조차 한 가운데 외국인 앞에서는 중국사회를 가늠케 하는 한 잣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을 다니며 그로 인한 애로사항이 많이 사라졌음을 실감하는 가운데 올림픽 개최도시 베이징 등지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택시들의 한국산 로고는 반가움을 안겨주기도 하는데, 그만큼 하드웨어적으나 그를 다루는 소프트웨어적으로나 보다 여유롭고 세련돼졌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쌀 뒤주에서 양반 난다” 던 옛말의 가치를 상기해 보게도 된다.

한편 근래 들어 중국사회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변화의 하나로서 과거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기도 했던 유교적 풍속의 부활 움직임은, 우리 기준에 비출 때는 별 새삼스러울 게 없으나, 위계질서적 가치와 격식의 복원을 통한 사회질서 재정비를 가져 오는 한 수단으로서 역활할 수도 있을 듯이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고 순수한 흐름이자 발전일 수도 있는 한편으로 보기에 따라서는 내부 통치방식의 조절이라는 측면과 함께 주변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패권주의적 시도로 해석될 여지도 다분하나, 동기야 어떻든 중국을 인문적인 나라로 변모시켜가고 있음에 틀림없으며, 따라서 그 추이와 결과가 주목된다.

지난 8월 개최된 ‘2008 베이징올림픽’은 현 중국사회의 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세계를 향해 벌인 성대한 잔치로서 국제적으로는 물론 중국사회 내부적으로도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일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 모습들로 넘쳐났었다. 특히, 외적 과시를 넘어 행사 준비와 진행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하거나 접한 국민들의 마음에 자부심과 문화적 질서의식을 높여줬으며, 각계각층의 수 백 만에 이르는 자원봉사 경험과 그를 통해 축적된 시너지는 공동체적 정신과 행동 양식을 보편화시키는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안정적 민주화과정으로 인도하는 한 유효한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속설에 높은 산에는 골짜기도 있으며 찬란한 태양 빛은 그림자를 만들기도 한다고 했던가, 세계사적 사건이라 할 법한 중국의 개혁개방에는 '성장통'이라 표현해도 어울릴 듯한 불균형과 불건전성도 부수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는 윤택해진 삶에도 불구하고 ‘빈부’、‘도농’、‘교육’ 등에서 그 양태를 달리한 채 비치는 불평등、부조리와 그 이전에 비해 사회 풍기가 이완되며 음주가무、이성관계 등에 있어 보이는 일부 난잡한 현상은 중국만의 현상은 아닐 것임에도 사회주의、공산주의적 가치가 제시할 것으로 기대되는 건전성과는 부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이 밖에 그간의 눈부신 발전과 굴기(崛起)는 외부세계로 하여금 ‘중국’이란 라벨이 붙으면 왠지 보다 거창하고 심각한 모습이나 현상으로 해석하고 경계조차 하게 만든 결과 긍정적、부정적 측면 모두에 걸쳐 상대적으로 크게 과장되며 부풀려지는 사례들도 종종 발생시켜 정치、경제、사회 등을 막론하고 중국과 그 국민들의 처신을 보다 조심스럽고 어렵게 만들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나는 중국의 개혁개방이 아직도 각 방면에 걸쳐 미완성이자 진행형이며, 또 그 완결을 위해 매진하는 것은 바로 위대한 설계자라 일컬어지는 덩샤오핑(鄧小平)이 미소 속에 강조한 “… 硬道理!”를 구현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이웃 중국이 국내적으로 과학발전관에 기초해 진정한 ‘조화사회(和諧社會)’ 를 건설하는 한편으로 대외적으로도 갈수록 커지고 높아질 규모와 위상에 수반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문화대국으로서 온전히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남재우 중국-호주 중심 무역중개/강의/자문 분야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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