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代 이 사람을 주목하라] 21. 한나라 배일도 당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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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배일도(비례대표) 당선자의 이력에선 '비(非) 한나라당' 냄새가 물씬 풍긴다. 당에선 드문 호남(김제) 출신이고, 노동운동(서울시지하철공사 노조위원장 세차례 연임)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삶도 파란만장해 당내의 다수 당선자와 대비된다.

그는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입학금이 없어 중학교 진학을 2년이나 미룰 정도였다. 5남2녀의 형제.자매 중 막내동생은 노점상을 하던 아버지 옆에서 놀다가 목숨을 잃었다. 노동을 하면서 장남의 학비를 대주던 셋째.다섯째 동생은 공사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가 노동운동에 투신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1973년 전북대 공대를 중퇴한 그는 고시공부를 하던 중 '하루 일하면 하루 쉰다'는 서울시지하철공사의 사원모집 공고를 보고 응시해 합격한다.

그러나 당시의 고된 노동조건은 고시의 꿈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노동자의 길을 택한 그는 87년 서울시지하철공사 노조를 설립해 초대 위원장이 됐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구속됐고, 해고까지 당한다. 이후 그는 장기표씨의 신문명운동, 김지하씨의 생명운동에 심취한다. 새로운 노동운동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98년 복직한 그는 노조위원장에 재선출되지만 '무쟁의 선언'을 한다. "경영진의 부패가 강성 노조 활동 때문에 오히려 은폐되는 걸 보고 이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서울시와 서울시 투자기관 노사의 3자로 구성된 '서울모델협의회'를 만든 뒤 파업을 한번도 하지 않았다. "경영자를 살려야 노동자가 산다"는 그의 주장은 노동운동계의 비난을 사기도 했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裵당선자는 국회 환경노동위를 희망한다. 그가 걸어왔던 노동운동의 길을 입법과 정책을 통해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그는 저서 '공존의 꿈'에서 "갖지 못한 자들이 갖지 못한 자들을 위해 과거에 마련된 어떤 틀을 고집하면 그 틀과 함께 갖지 못한 자들의 운명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자신의 노동운동 철학이 옳다고 주장했다.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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