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단 한 번 밀려도 빌린 돈 다 갚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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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대형 대부업체 10곳 중 9곳은 소비자에게 불리한 불공정 약관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32개 대형 대부업체 중 87.5%인 28개사의 약관에 모두 141개의 불공정 조항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가 6년 전인 2002년 9월 표준약관을 만들어 사용을 권장했으나 대부분 이를 쓰지 않고 자체적으로 불공정 약관을 만들었다.

엠원크레디트는 고정금리 대출 약관에 ‘채권자가 이자율을 변경하면 채무자는 이에 따른다’는 내용을 넣었다. 고정금리 상품인데도 시장 상황에 따라 대부업체가 마음대로 이율을 바꿀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머니라이프는 이자를 단 한 번 제때 내지 않아도 빌린 돈 전부를 바로 갚으라고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단기간 이자를 연체했을 때는 원금 전체 상환을 요구해선 안 된다”며 불공정 조항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산와머니는 대출 계약이 끝날 때까지 채무자가 별다른 의사 표시를 하지 않으면 계약이 자동으로 5년 연장되도록 했다. 그러나 연장할 때는 반드시 본인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게 공정위의 해석이다. 강남캐피탈은 ‘회사 임의대로 채무자와 담보 제공자의 전 재산에 법적 조치를 취해도 채무자와 담보 제공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이는 대부업체가 빚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압류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것이어서 문제로 지적됐다.

공정위 측은 “대부업체들이 불공정 약관을 자진해 고치도록 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약관을 고치지 않으면 시정명령을 하고 불복하면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대부업체 규제 강화=내년부터 대부업체는 이용자들이 캐피털이나 저축은행과 혼동하지 않도록 상호에 ‘대부’란 명칭을 꼭 사용해야 한다. 다만 ‘러시앤캐쉬’ 등 브랜드에 ‘대부’ 명칭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금융위원회는 이런 내용의 대부업 관련법 개정안이 차관회의를 통과해 이르면 내년 2월에 시행된다고 6일 발표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대출 계약서 작성 때 대부금액·이자율 등 주요 사항은 이용자가 직접 쓰도록 의무화했다. 대부업체의 등록을 유도하기 위해 무등록 대부업체가 연 30%가 넘는 이자를 받을 경우 대부업법에 따라 처벌한다. 등록 대부업체의 법정 이자 상한선은 연 49%다.

김준현·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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