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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일본교과서에 수필실린 와타나베 길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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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88년 서울 올림픽에 즈음해 일본에선 한글배우기 바람이 불기시작했다.그리고 그 바람은 올림픽이 서울을 떠난지 10년이 돼가는 지금도 잦을 줄을 모른다.이런 현상을 지켜보며 새삼 가슴이 뿌듯해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와타나베 길 용(渡邊吉鎔.52.게이오대 쇼난 후지사와 캠퍼스 종합정책학부 교수)씨.일본이라는 밭에 한국어의 씨를 뿌리는데 지난 20여년을 바친 한국출신여성이다.72년 일본 게이오대 경제학부에 개설된 한국어 강좌를처음부터 주재해 왔고,80년대 초에는 NHK 라디오의.안녕하십니까 한글'을 맡아 이 프로를 인기 반열에 올려놓더니 최근엔 그의 수필.외국어 학습과 사전'이 일본 고등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돼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안식년을 맞아 집필기획중인 저서.서울'의 자료수집차 한국에 온 와타나베씨,아니.한국인김길용씨'를 만났다.
[편집자註] -한 나라 말의 본보기가 되는 글들을 수록하게 마련인 고등학생용 국어 교과서에 외국인의 글이 수록되는 사례는흔치 않을 것같습니다.어떤 내용의 글입니까.
“92년 이와나미샤(岩波社.출판사)에서.사전(辭典)을 말한다'는 제목으로 학자.연예인.작가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쓴 글을 모아 에세이집을 냈어요.거기에 실린 것인데 외국어를 제대로 배우는데 사전은 크게 도움이 안된다는 이야기지요 (별도기사참조).제 자신이 일본어를 처음 배웠을 때의 체험이 바탕이 됐어요.글을 비교적 명료하게 쓴다는 평을 받고 있어요.” -와타나베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게이오대의 첨단학부는 21세기형 첨단캠퍼스의 모델이라고 해 한국 대학사회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있습니다.지난 4일 교육부초청으로 한국에 왔던 게이오대 다카하시 준지로(高橋潤二郎) 부총장의 강연내 용도 학교시스템을 소개하는 것이었지요.
“제가 일하는 쇼난 후지사와 캠퍼스(SFC)는 90년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후지사와(藤澤)시에 게이오대의 제5캠퍼스로문을 열었습니다.첨단학부인 종합 정책학부와 환경정보학부등 2개의 학부가 있고 4천여명의 학생이 재학중입니다.이 캠퍼스에 도입된 새로운 시스템의 기조(基調)는 이렇습니다.
네트워크화한 사회에서 살아가야할 학생들이 종합적인 지식과 지적인 전망을 갖기 위해서는 중요한 두개의 기능이 요구되는데 그중 하나는 외국어 구사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테크놀로 지,즉 컴퓨터 활용능력이라는 거죠.외국어는 일반 대학과 달리 하나의 외국어만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합니다.90년 첫해부터 영어.프랑스어.독어.중국어.한국어.말레이 인도네시아어 모두 6개의 언어중 택일토록 했습니다.95년 스페 인어를 추가했습니다.
한국어 강좌는 한학년 60명이 정원인데 한국의 언어와 문화등을소개하는 코리아 위크 행사를 벌이는 등으로 하여 성과가 좋았습니다.한국어의 캐치프레이즈가.짧은 시간에 완성도가 높은 언어'라는 것이지요.재미있는 것은 학생들 사이에 영어등 구미권(歐美圈)언어의 인기가 갈수록 떨어지고 아시아권 언어의 인기가 높아지는 현상입니다.아시아 시대임을 실감합니다.컴퓨터교육은 매주 3시간씩,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쓸수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합니다.
” -2개의 학부가 있고 따로 전공은 없다는 얘기인데 졸업생들의 사회진출 상황은 어떻습니까.특히 외국어로 한국어를 택한 경우 다른 언어 전공자와 비교할때 진로에 차이가 납니까.
“전공학과는 없지만 환경 정보학부에는 정보처리.인간환경.미디어환경 코스가 있고 제가 속한 종합정책학부에는 정책관리.비(非)영리경영.국제관계 코스가 있습니다.졸업생들은 현실 상황에 입각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실학적'인 학문의 방법에익숙한데다 정보시대의 업무처리 수단인 멀티미디어 다루기에 능해,채용 즉시 현장투입이 가능하므로 기업에서의 인기가 높습니다.
한국어 전공자들도 신문사.방송국.은행.컴퓨터회사등 안가는 곳이없을 정도로 다양한 직장에 취업합 니다.최근 일본사회가 새로이아시아의 존재를 인식하는 분위기에서 흔치 않은 외국어를 아는 보배로운 존재로 인식되고 있어요.” -88 서울올림픽에 즈음해일본에서 한국어 배우기 붐이 있었다고 하는데 한국관련 독립학과가 개설된 일본대학은 몇개나 됩니까.
“제가 알기로는 오래된 것이 덴리(天理)대이고 그밖에 일본 오사카(大阪) 외대.도쿄(東京) 외대.와코(和光)대 정도가 아닌가 싶어요.교양선택 외국어로는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지 않은 대학이 드물 정도지요.요즈음은 좋은 강사를 소개해 달라는 요청이 많아 마땅한 사람 찾기가 힘들 정도예요.도쿄대에서 최근 임명한 한국어 전임교수도 제가 도쿄대에서 가르친 제자예요.감회가깊었습니다.” -일본인으로서 한국어를 할줄 알거나 지속적으로 배우고 있는 인구는 얼마나 될까요.한국어 능력을 측정하는 검정시험도 생겼다고 들었습니다만….
“글쎄요,제가 83년 NHK 라디오에서 한국어 강좌를 할때 교재가 최고 30만부 팔린 기록이 있어요.지속적으로라면 10만명쯤 될까요?검정시험은 출판사에서 주관하는 것등 두종류가 있는걸로 압니다.” -게이오대에서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택한 학생들은 졸업할때 쯤이면 어느 정도의 한국어 실력을 갖게 됩니까.
“외국어 교육은 1학년 2학기부터 실시되는데 저는 학생들이 글자의 기본만 익히면 곧 한국 신문을 교재로 공부시켜요.그것이한국의 현실을 이해하고 지루하지 않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지요.총 3학기를 공부하고 나면 사전을 갖고 신문을 보는 수준이됩니다.2,3학년 여름방학이 되면 서울대로 2~3주간의 어학연수를 옵니다.서울대 어학연구소가 짠 프로그램에 따라 공부하는데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보조교사로 활약하는 또래의 서울대생들과교류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직접 부딪쳐 편견없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와타나베교수는 게이오대 학생들이한국에 한번 왔던 친구를 앞세워 배낭여행을 다녀온뒤 서울무교동에서 낙지볶음을 맛본 경험을 얘기하고 여행길에서 산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수록된 테이프를 틀어놓고 흥얼거리는 것을 보면서 국경이 무의미해지는 시대임을 실감한다고 했다.한나라의 국제화는 외국어를 배우는 노력 못지않게 자기나라 말을 효율적으로 외국 인에게 보급하는 것이 중요한데,한국은 그점에서 너무.배우기'쪽으로만 기울어 있는 듯하다고 조심스런 충고도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한글 세대로는 상당히 일찍 일본유학을 하신 셈이죠.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저는 여학교때 굉장히 미국에 가고 싶었어요.대학교 2학년때도미하겠다고 나섰더니 집에서 극구 말리다 정 외국을 가겠다면 외삼촌(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이 계신 가까운 일본으로 가라는 허락이 떨어졌어요.국교정상화 전이라 직접 입국비자를 받을수 없어 홍콩을 거쳐 일본으로 갔어요.1년여 준비끝에 게이오대 영문과에 편입해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 캘리포니아대에서동양언어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지요.일본인인 남편(와타나베 마사히코.52.공인회계사)도 게이오대 출신으로 미국의 같은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쳤어요.결혼후 남편이 미국계 공인회계사 회사에 취직했는데 곧 도쿄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함께 돌아와 모교에서 한국어 강사생활을 시작했죠.” -부군과 아들(25.미국 유학중)에게도 한국어를 가르치셨습니까.일본인이 한국어를 배울때 부닥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한다'는 식으로 한국말을 읽을 줄은 알지요.어려워하는 부분은 발음이지요.한 예로.칼날'처럼 리을과 니은이 만나면 둘다 리을로 바뀌어.칼랄'로 발음되는 경우는 정말 힘드는 것같아요.” -한국과 일본 두나라에서 교육받고생활한 한글세대로서 느끼는 두나라의 다른점과 같은 점은 무엇입니까. “언어의 구조같은 것은 실제로 상당히 많이 닮았어요.그러나 사람들의 사고나 행동방식은 많이 다릅니다.상당수의 일본인들은 타인과의 마찰을 극도로 꺼려 감정표현을 안해요.일본인과의대화에서는.말없는 부분'을 캐치하는 것이 중요하지요.또 한국에선 주로 지식인의 문화만을 가치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반면 일본에서는 대중의 욕구도 소중한 것이 다르지요.야한 일본 대중문화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도 그런 맥락인 듯합니다.” -저서목록을 보면 초창기의 한국어교재 중심에서 점차 문화사회적인 쪽으로 시각을 넓히고 있는데 올해 출판된 .한국언어 풍경'(이와나미 신서)은 어떤 내용을 담은 것입니까.
“언어사회학적인 측면에서 한국사회의 여러 현상을 살펴본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한국말에 스며있는 상징성에서부터 우주관,현대시의 배경,유행하는 짧은 이야기등을 변화의 측면에서 바라보고숨은 의미를 폭넓게 담아봤습니다.교린(杏林)대에서 한국관계 강의를 하고있는 전 주한 일본대사 스노베 료조씨가 재미있게 읽었다는 편지를 보내주셨더군요.” (그는 한국사회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한국 일간신문 2개와 잡지들을 구독하며 매년 1백여권의 책을 사간다고 한다).
▶1944년 서울 출생.원명 김길용(金吉鎔) ▶1963년 경기여고 졸 ▶1964년 이화여대 영문과 재학중 도일 ▶1968년 일본 게이오(慶應)대 영문과 졸 ▶1970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대학원 석사(동양언어학 전공) ▶1972 게이오대 경제학부 한국어 강사 ▶1981년 게이오대 문학부 전임강사(NHK 라디오 한국어방송 강사) ▶1981~88년 도쿄(東京)대 한국어 강사 ▶1988년 게이오대 문학부 교수 ▶1990년 종합정책학부 교수(현재) 저서:.한국어를 권하며'.첫번째 한글 레슨'.자유자재로 쓰는 한글 레슨'.한국언어 풍경'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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