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보선 때 민노당 선택한 여수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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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동(계속) 뽑아 줬드만 돌봐 주도 안 하고, 쳐다도 안 보고…. 여론이 안 좋아 부러.”

지난 2일 전라남도 여수시 묘도의 부둣가에서 만난 어민 김순조(68)씨는 민주당에 대한 평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뜸 이렇게 답했다. 그러면서 지난 10·29 여수시의원 보궐선거 때 “난생 처음 민주당 아닌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했다.

여수는 민주당의 주된 지지 기반이다. 그렇지만 이번 보선에선 민주당 후보(이선효·2928표)가 아닌 민주노동당 후보(김상일·3021표)가 당선됐다. 여수시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선거에서 민주당이 패한 건 극히 이례적이다.

묘도와 여수 국가산업단지(산단) 주변 마을인 삼일동 주민들이 민노당에 던진 몰표가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갈랐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었다. 묘도는 율촌산단·여수산단·광양제철소로 둘러싸인 섬마을. 묘도의 민심은 왜 민노당을 택했을까.

여수산단 앞 월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7분. 묘도에 내리자 시큼한 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선거 이야길 꺼내자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민주당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묘도 청년회장 김종련씨는 “섬에서 죽는 사람의 사망 원인 90% 이상이 암인데도 보상은커녕 역학조사 한번 없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민주당이 30년 설움을 풀어 줄 거라 믿었지만 지난 10년간 나아진 게 없다”는 하소연이었다. 여수 산단 일용직 근로자 김정식(46)씨는 “산단이 준 건 일용직 일자리뿐인데 이제 그마저도 별로 없다”며 “민주당은 떠나는 주민들을 뒷짐 지고 쳐다보기만 했다”고 꼬집었다. “김 후보가 인근 삼일동 출신이어서 몰표가 나온 것일 뿐”이라는 반론도 있었지만 많은 주민의 생각은 달랐다.

원래 묘도 주민들의 생업은 어업이었다. 그러다 1969년 종합화학단지가 건설되면서 인근 어장이 항로로 묶여 밭뙈기 농사를 짓거나 일용 노동직으로 바뀌었다. “배를 몰고 나갔다 해경에 걸리면 300만~400만원의 벌금을 문다”고 한다.

최근엔 산단 근로자들이 발암성 유기용제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연구 결과(2005년), 다이옥신 폐수가 광양만으로 흘러든다는 소식(2007년)으로 마을이 술렁였다고 한다. 80년대 중반 3000명이 넘었던 묘도 인구는 지금 1382명이다. 주변 마을의 처지도 비슷했다. 인근 삼일동 일부 지역(중흥마을과 삼간도) 등은 집단 이주로 사라져 가고 있다.

김 후보 측은 “건설 노조에 가입된 1600여 명의 일용직 근로자 설득에 집중했던 게 주효했다”며 “이들 중 상당수는 삼일 지역 출신”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 후보 측은 “유권자들이 어차피 민주당이 될 거라는 생각에 투표하지 않은 것 같다”며 “다른 시의원들과 당 조직의 도움을 별로 받지 못한 것도 원인”이라고 패인을 분석했다.

산업단지와 떨어진 여수시 중심부 시전동에서 만난 주민들도 민주당에 시큰둥하긴 마찬가지였다. 시전동 개표 결과는 민주당이 조금 우세했다. 하지만 투표율(20.3%)은 선거구 전체 평균(23.5%)을 밑돌았다. 주민 권모(37)씨는 “이번에 아예 투표를 하지 않았다”며 “민주당 간판이면 다 되는 시대는 지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박모(43)씨 역시 “민주당이 대안이 못 되는 것 같다”며 고개를 돌렸다.

주민들의 향후 전망은 갈렸다. 삼일동의 매점 주인 배모(33)씨는 “연고만 탄탄하면 민주당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봤지만, 택시기사 김모(58)씨는 “어차피 여수는 민주당의 텃밭이니 과잉 해석하지 말라”고 귀띔했다.

여수=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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