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 더 어렵다” 수출업계 비상경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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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전선에 비상이 걸렸다.

세계적 경기 침체로 지난달 수출이 주춤하면서 크리스마스 특수가 자취를 감췄다. 비록 지난달 무역수지가 모처럼 흑자로 돌아섰지만 수출 업체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수출 증가보다는 원유값 하락에 따른 수입 감소 덕에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10월 수출은 지난해 10월보다 10% 증가한 데 그쳤다. 올 들어 수출이 9월까지 23% 늘어난 것에 비하면 완연한 둔화세다. 주력 수출품의 부진 탓이 크다.

◆주력 수출 상품 부진=10대 주력 수출상품 중 자동차와 반도체·석유화학·LCD 등의 수출이 지난달 감소했다. 반도체 수출은 무려 26% 줄었고 자동차도 14% 뒷걸음질했다. <그래픽 참조>

조선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18% 늘었지만, 요즘 업계는 위기를 느끼고 있다. 10월 조선산업의 수출증가율은 3~4년 전 수주한 물량이 인도되면서 수출 통계에 잡혔기 때문에 큰 폭의 증가율을 기록한 것이다. 올 들어 선박 발주는 크게 줄었다. 1~9월까지 국내 조선업체의 선박 수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8% 감소했다. 또 10월에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신규 수주를 한 척도 못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자동차 수출은 올 들어 9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 감소한 데 그쳤지만 10월 들어 감소폭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미국과 서유럽 등 선진국의 경기 침체와 더불어 동유럽의 극심한 불황으로 인해 주문 취소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수출은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폭락으로 7월 이후 4개월 연속 줄었다. 휴대전화기가 대부분인 무선통신기기의 수출증가율도 10월에 확 꺾였다. 올 들어 9월까지 무선통신기기 수출증가율은 29%였다. 그러나 10월에는 13.5% 증가에 그쳤다.

◆비상경영 나선 수출 업체=국내 최대 수출업체인 삼성전자는 최근 미국과 유럽 등 각 지역총괄에 지역별 전략을 완전히 새롭게 짜기로 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상대적으로 경기를 덜 타는 중소형차 수출에 주력할 계획이다.

현대상선과 APL·MOL 등 대형 선사들이 가입한 뉴월드얼라이언스(NWA)도 유럽 항로와 미주 항로에 대한 선박 운항을 20~25%가량 줄이기로 결정했다. 세계적 불황으로 선박 운임이 급락한 데 따른 자구책이다. 해운업계 시황을 나타내는 지표인 BDI(발틱건화물운임지수)는 지난 3일 827을 기록하며 최근 10년간 최저치로 떨어졌다.

◆내년이 더 문제=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은 내년 수출이 8%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2002년 이후 두 자릿수를 이어간 수출증가세가 내년에는 절반 수준으로 둔화될 것이란 의미다. 민간 경제연구소들이 이처럼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미 실물경제로 전이돼 소비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10월 들어 선진국 시장의 침체는 이미 심각한 상황에 돌입했다. 통상 10월부터는 가전과 정보기술(IT) 제품을 중심으로 크리스마스 특수를 톡톡히 누려 왔다.

그러나 10월에 가전 수출은 28%, 컴퓨터는 37%씩 줄었다. 올 들어 9월까지 수출증가율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수치다.

전영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올 하반기 들어 우리의 주력 시장인 개발도상국의 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했고, 내년엔 불황이 더 심화될 것으로 본다”며 “더구나 유가 상승으로 급증했던 석유제품 수출도 더 이상 호조를 이어가기가 어려우리란 예상에 내년 수출증가율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희성·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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