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온 김경호씨 一家 本紙기자 機內 동승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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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상연기자(정치부)▶신중돈.김상우.김기찬.김창우.배원일.이상언기자(사회부)▶이상일.이훈범기자(국제부)▶윤석준기자(문화부)▶조용철.주기중기자(사진부) 김경호(金慶鎬.61)씨 일가족이홍콩 카이탁(啓德)국제공항에서 서울행 대한항공 618기편에 오른 것은 이날 낮12시35분(현지시간)쯤.다리가 불편해 휠체어에 탄채 비행기에 오른 金씨에 이어 부인 崔현실(57)씨와 나머지 가족들이 아이를 안거나 이끌고 차례로 탑승했다.
여객기 사무장 金용대(47)씨가“여러분들이 타고 있는 비행기는 대한민국 국적기입니다.이제 안심하십시오”라고 인사말을 건네자 金씨는“고맙다”고 짧게 인사.하지만 모두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이들이 비행기 이코노미 클래스 앞좌석 에 모두 앉고 난뒤 일반 승객의 탑승이 이루어졌다.대한항공측은 폭발물 테러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여행자 짐 이외에는 화물을 일절 싣지않았으며 카이탁공항에서 철저한 보안검색이 이루어지는 바람에 이륙이 15분 이상 늦어졌다.
이륙 후에도 金씨 가족들은 긴장을 풀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했고 金씨의 딸 3~4명은 멀미로 구토를 하기도 했다.
“소감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金씨는“아파서 입을 열 수없다”며 답변을 거부.부인 崔씨도“속이 메스꺼워 말을 전혀 할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나머지 가족들도“서울에 가서 모두 말하겠다”며 입을 봉했다.
그래도 역시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비행기가 신기한듯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렸다.아이들에게“비행기를 처음 타보느냐”고 묻자 金씨 자녀등이 서둘러 아이들의 입을 가로막고 나섰다.경호요원들은 계속해 金씨 가족들에게 주의하라는 눈짓을 보냈다.혹시불필요한 말로 물의를 빚을까 경계하는 눈치였다.
金씨의 셋째 사위 朴수철(38)씨는“왜 모두 이렇게 긴장하느냐”는 물음에“한국에 가게돼 기쁘지만 우리가 주의할 사항이 많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주문.
임신 7개월의 막내 딸 명순(28)씨는“비행기를 처음 탄 때문인지 어질어질할 뿐”이라고 말했다.이어 서울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우리 아이는 자유의 땅에서 자라게 하고 싶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답변했다.
아이들을 제외한 金씨 가족들은 북한에서의 고생과 피를 말리는길고 긴 탈출 여독.긴장이 겹친탓인지 자신의 나이보다 대여섯살씩 더 들어보였다.그러나 기내에서 제공되는 신문에 실린 자신들에 관한 기사를 서로 돌려 읽어보며 간간이 미소 를 짓기도 했다.기내식이 제공되자 金씨 일가족은 대부분 쇠고기 스테이크 요리를 주문했지만 막상 끝까지 먹는 사람들은 없었다.그저 과일을조금씩 먹는 정도였고 대부분은 화장실로 직행했다.
식사를 마쳤을 때 서울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기내방송이 나오자남아있던 긴장을 털어내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장남 금철(30)씨는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듯“우리가 정말 서울로 향하고 있는게 맞느냐”며 기자에게 되묻기까지 했다.
차녀 명실(36)씨에게“언니는 왜 북한에 남게 됐느냐”고 묻자 갑자기 목이 멘듯 말을 잇지 못한채 고개를 떨궜다.엄마의 이같은 모습에 마냥 들떠있던 옆자리의 아들 충진(6)군의 얼굴도 굳어졌다.
하지만 뒷좌석의 박현철(9).봄(5)등 셋째딸 명숙(34)씨자녀들은 승무원이 가져다준 헤드폰.인형등을 만지작거리며 신명을감추지 않았다.
차남 성철(26)씨에게“서울은 홍콩과 달리 몹시 춥다”고 말을 건네자“그까짓 추위가 뭐 대수라요”라며 두고온 고향에 대한짙고 깊은 염증을 내보였다.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착륙하는 순간 이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고손을 흔들며 자유를 찾은 스스로를 자축했다.
44일간의 기나긴 탈출여정과 마음 고생을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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