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총독부 '風水'로 철거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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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풍수설(風水說)에 따라 지어졌던 일제의 대표적 잔재인 서울의조선총독부 철거작업이 완료된 가운데 홍콩에서도 영국 식민통치의상징인 총독관저를 97년 반환뒤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풍수와 관련,주목을 끌고 있다.
“당신이 만일 97년 탄생하는 홍콩특별행정구(SAR)의 초대행정장관으로 선출된다면 지금의 총독부로 이사할 생각입니까.” 지난달 28일 행정장관 후보들의 정견발표장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인 둥젠화(董建華)에게 던져진 질문이다.董은 이에대해“박물관으로 보존하는 방안이 좋다”며 현재 거론되는▶계속 사용▶철거▶역사유적으로 보관등 3가지 방안중 맨 마지막 것 을 선택하는 입장을 취했다.董은 풍수를 고려해 관저입주를 꺼리고있는 것으로알려졌다.
홍콩섬 중심가인 어퍼 앨버트 로드에 위치한 총독부는 1855년에 세워진 것으로 총독의 관저이면서도 집무실,각국 외빈들을 맞는 연회장으로도 사용되는 다목적용이다.
처음엔 피크산을 뒤로하고 빅토리아항을 바라보는 절경에 위치했었는데 지난 70년대부터 홍콩상하이뱅크.중국은행 빌딩등 고층 건물들이 잇따라 주위에 들어서면서 풍수가 크게 나빠졌다.
특히 84년 영국과 홍콩반환협정을 체결한 중국이 이듬해인 85년부터 착공,90년 완공한 높이 3백15의 70층짜리 중국은행 빌딩은 외관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칼로 총독부를 양단(兩斷)하는 형세를 취하고 있다.
홍콩 풍수가들은 이로 인해 “총독부에 살기(殺氣)가 넘친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당시 총독이던 윌슨경 부인이 직접 비수처럼 총독부를 찔러오는 중국은행의 살기를 꺾기 위해 정원 한곳에 버드나무를 심는 한편 사각형이던 정원의 분수를 원형으로 바꿨다.
.부드러움으로 강한 것을 누른다(以柔制剛)'는 풍수의 원칙을응용한 것이다.
현 크리스 패튼 총독도 92년 부임하자마자 풍수사를 불러 자문을 구했다.그는 풍수탓인지 93년초 심장질환으로 수술을 받았다. 만일 董이 한사코 총독부 입주를 사양할 경우 새 관저가 필요한데 최소 1억홍콩달러(약1백억원)이상이 필요하고 또 이같은 관저를 새로 지을 시간도 없다는 점이 문제다.
한편 홍콩의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총독부의 시가가 2백50억원으로 이를 철거할 경우 10만여평의 사무실 빌딩을 지을 수 있다며 군침을 흘리고 있어 총독부의 운명이 어찌될지 주목거리다.
[홍콩=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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