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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하락 땐 가계보다 중소기업이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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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은 제자리인데, 대출금리는 높아지고 주가는 빠진다. 게다가 경기는 고꾸라지고 물가는 고공행진이다. 빚이 있다면 가만 있어도 살림이 빡빡해지는 때다. 기업도 사정이 자꾸 나빠지고 있다. 은행 입장에선 그만큼 위험이 커졌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이 2일 내놓은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금융업을 둘러싸고 있는 위험이 지난해보다 한 단계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과 가계의 빚 상환 능력, 세계경제 상황, 은행의 건전성 등 모든 지표가 ‘불안’ 쪽으로 한두 단계씩 높아졌다. 이것도 9월 15일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신청을 계기로 불거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이광준 한은 금융시장분석국장은 “주가 하락과 환율 상승 등으로 금융시장의 안정성이 나빠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전체적인 금융회사의 건전성 등은 아직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고 말했다.

◆빚 갚기 부담된다=우리나라 가계가 은행에서 빌린 돈은 2005년 말 305조5000억원에서 올해 9월 말엔 383조4000억원을 불어났다. 빚이 늘어도 그만큼 금융자산이 늘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주가가 빠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한은에 따르면 개인이 세금이나 연금을 제외하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가처분소득)과 금융부채의 규모를 비교한 결과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금융부채가 가처분소득의 1.53배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1.48배보다 높아졌다. 가처분소득보다 금융부채가 더 빠르게 늘어났다는 얘기다. 이 비율은 영국(1.78배)에 비해선 낮지만 미국(1.32배)이나 일본(1.11배)보다는 높다.

금리가 뛰면서 가계가 은행에 갚아야 할 이자와 원금(원리금)도 크게 늘었다. 은행이 가계대출에 적용하는 평균 금리는 2005년 말 연 5.63%에서 올 9월 말에는 7.45%로 높아졌다. 이에 따라 가계의 가처분소득에서 대출이자로 갚아야 할 돈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9.4%에서 올해 6월 말에는 9.8%로 상승했다. 한은이 이 조사를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연말엔 10%대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6개 시중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쓰고 있는 개인들의 연간소득에서 원리금 상환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5년 말 15.3%에서 올 6월 말엔 20.7%로 급상승했다. 연간 소득의 5분의 1을 이자와 원금 갚는 데 쓰고 있다는 얘기다.

◆중기 신용엔 빨간 불=한은이 중소기업 신용등급 데이터 베이스를 통해 10만1839개 업체를 대상으로 돈을 제때 못 갚을 위험이 얼마나 되는지를 분석한 결과 6월 말 현재 투기등급(신용 7~10등급) 업체 수가 전체의 33.5%에 달했다. 지난해 말보다 5.4%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중소기업이 경기침체에 훨씬 취약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한은은 “앞으로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의 신용위험은 현재보다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런데도 중소기업 대출액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6월 말 중소기업 한 업체당 대출액은 19억4000만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억3000만원(13.5%) 증가했다. 평균 연체율은 0.83%로 지난해 말보다 0.14%포인트 상승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건설업의 연체율이 0.97%로 가장 높았다.

특히 향후 주택가격이 하락할 경우 가계보다는 중소기업 대출에서 금융회사의 손실액이 더 클 것으로 분석됐다. 한은은 주택가격이 20% 하락할 경우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예상 손실액은 전체의 70%로, 가계(30%)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은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중소기업의 여섯 배지만 중기 대출의 경우 담보인정비율(LTV)이 높아 가격 하락 때 손실액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김준현·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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