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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짚기>컴퓨터 주도 사회 대반격-뇌의 혁명 삶을 바꾼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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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실현가능한 상상 한토막-서기 2020년 무역회사 중역 K씨의 어느날.그는 출근길에 지능 향상용 알약 한알을 삼킨다.원래 지능지수 90에 불과한 그로선 불가피한 일이다.“오늘은 중요한 회의가 있으니까 IQ 1백50에 맞춰야지.”오전11 시 기획회의.뇌파를 알파(α)상태로 즉시 만들어주는 모자.알파나'를 썼다.믿음 덕인지는 몰라도 곧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디어가샘솟는다.오후2시에는 기억력 회복을 위해.다기어캐'물약 한병을추가로 마셨다.
퇴근시간.택시기사와 말다툼 끝에 주먹질이 오갔다.그러다 왼쪽시계 위에 부착된 버튼을 잘못 터치.3번 영역,즉.웃음'중추로연결된 선이 끊어져 버렸다.화를 내야 할 대목에서도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K씨의 혼잣말.“아무래도 우린 뇌 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린 것같아….” 무게 1.3~1.5㎏,.소우주'.블랙박스'로 불리는 20세기 최후의 미개척지.어떻게 보면 사악하기조차 한 인간이 그것을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20세기가 끝나기 전,뇌는 두터운 베일을 벗고 비밀을 털어낼 수 있을까. 겉으로 보면 인간의 뇌는 위축 일변도의 길을 치닫고 있다.컴퓨터의 눈부신 발전을 인간 능력의 축소로 직접 연결짓는사람들이 많은 탓이다.하지만 과연 그럴까.실제로는 인체의.최고사령관'인.뇌의 비밀 들추기'작업은 더욱 활발하다는 편이 옳다.심리학.의학.공학등이 총동원돼 수수께끼 자체였던 뇌의 신비가조금씩 풀리고 있으며,알려진 사실들은 속속 실용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두뇌 개발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은 이미 절정.그래서이렇게 외쳐도 좋을 것같다.자,이제 뇌의 혁명이다.
한권의 책이 있다..뇌내혁명(腦內革命)'.일본에서 3백만부가 팔린 이 책은 번역 출간된 이래 벌써 40주째 베스트셀러 자리를 고수중이다.“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이 각기 다른 뇌분비물을 내고,이 물질이 정신.육체의 건강을 결정 짓는다”는게이 책의 요지.실로 단순한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뇌를 최고도로활성화하는 방법과 기억력 향상 테크닉이 양념격으로 담겨 있다.
또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마인드 맵'시리즈.엄격히 말하면.브레인 맵'이 돼야겠지만,어쨌든 마음에 그림을 그리자고 외치는 이 책은 직장인들 사이에.필독서 1호'로까지 꼽히고 있을 정도다.이 책의 성공 직후 아류격인.우뇌(右腦)개발서 '가 봇물을이뤘다.그 결과 장안에 때아닌.우뇌 신드롬'이 불기도 했다.왼손잡이가 갑자기 눈에 많이 띄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게다.현재 서점가에는.뇌'자가 들어가는 책만 2백여종.지난해에 비해 30%가량 늘어난 숫자다.
물론 사람들의 호기심을 타고 상업화에 성공한 것은 책만이 아니다.가장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분야는 뇌파연구.명상중인 사람의 뇌에서 발생한다는 알파파가 창조성의 근원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소위 뇌파 안정기라 불리는 기계가 속속 등 장하고 있다.유사품종만 10여개.수험생들의 묘한 기대심리까지 맞물려 몇년안돼 벌써 수백억원대의 산업으로 성장했다.이밖에도 창조성을 개발하는 음악,기억력을 좋게 하는 소리,스트레스를 없애주는 음향등을 담은 음반도 수십여종 출반돼 있 다.가위 뇌 개발 상품의홍수사태로 불러도 좋을 정도다.
***그 뿐이 아니다.최면같은 다소 신비주의적인 요법도 뇌의정체를 알리는데 적극적으로 동원되고 있다.환생에 대한 관심이 전국을 강타한 지난 봄,정신과 의사가.전생으로의 여행'이란 책을 내놓았는데 그것 역시 다시 선풍.
.전생치료법'원리는 간단하다.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이“인간의 뇌 속에는.집단무의식'이라 불리는 기억창고가 있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잠재의식 속에 무궁무진하게 살아숨쉬는 각종 기억.비밀의 문을 최면이란 열쇠로 열어젖히는 작업이다.
초월명상(TM).선(禪)도 장르는 다르지만 두뇌활동을 극대화하고 소위 초능력을 개발하는 한 방편으로 많은 동호인들을 갖고있다. 하지만 이 모든 관심사는 결국 대학으로 상당부분 집결된다.94년 서울대.연세대.성균관대는 공동으로.인지과학'.언어와인간'등 2개의 강좌를 개설했다.인문.사회.자연과학등 기존의 학문 분류체계를 뛰어넘어 심리학.신경과학.언어학.의학 등이 총망라된 이 강좌는 당시 학생들 사이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졌고,현재에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사이버공간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천리안.하이텔등 PC통신에서는 .심리학동호회'등을 통해 인지과학에 대한 정보가 교류중이다. “인지지도(cognitive map)를 그려라.”앞으로의 뇌 연구과제는 결국 뇌속의 각 영역이 어떤 감각.심리적 현상과정확히 연계되는지를 밝혀내는 일이다.이것이 가능해진다면 약을 통한 기억력 증진과 공격행동 제어,심지어 정서조절도 가능해진다. 뇌졸중.파킨슨씨병.알츠하이머병등 현재의 불치병도 극복가능할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다소 멀게 보이는게 사실.그러나“2000년이 오기전가시적인 성과가 분명 보일 것”이라는 서울대공대 이충웅(李忠雄)교수의 말처럼 각 분야의 연구성과가 활발히 합쳐진다면 생각보다 빨리 우리곁에 나타날지도 모른다.한편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들은 또다른 산업과 문화양태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물론 더욱 중요한 것은 컴퓨터에 우리의 모든 지적 능력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겠지만.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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