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어린이·문학] 말 걸어주고 감싸주고 … 넌 그런 아파트 알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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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요란요란 푸른아파트
김려령 글, 신민재 그림, 문학과지성사
176쪽, 8500원, 초등 3∼4학년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의 새 책이다. 지난해 마해송문학상과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창비어린이문학상을 모두 휩쓴 김려령은 이제 그 이름만으로도 눈길을 잡는 작가다.

『요란요란 푸른아파트』는 김려령 장편으로 네 번째 책이지만, 실은 처음 쓴 작품이다. 2006년 완성돼 2년 동안을 원고 상태로 보관해왔던 이야기다. 김려령 특유의 개성적인 캐릭터와 경쾌한 문체는 『요란요란 …』에서부터 이미 선명했다.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은 ‘사물의 말하기’다. 지은 지 40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 네 동짜리 푸른아파트를 의인화했다. 아파트 각 동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도와준다.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다.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또 평수나 값으로 계산되는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사는 하나의 가족인 셈이다.

주인공은 열한 살 기동이다. 원래 4학년이 돼야 하지만 아홉 살 때 입학하는 바람에 이제 3학년이다. 결혼식도 제대로 치르지 않은 엄마·아빠는 “방 한 칸 마련할 돈이 생기면 데리고 갈 것”이란 말을 남긴 채 할머니에게 기동이를 맡기고 가버렸다.

폐품 수집으로 먹고사는 할머니는 푸른아파트 2동이 집이다. 푸른아파트 주민들은 재건축을 희망으로 산다. 그런데 재건축이 무산됐단다. 동마다 현수막을 내걸었다. 3동에는 기다란 검정 띠를 ‘ㅅ’자 모양으로 둘러놓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파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써서 걸어 놓았다. 1동 502호 영감은 재건축이 취소된 게 화가 나서 밤마다 망치로 벽을 두드려 댄다. 그런 대접을 받는 아파트지만 사람들을 보듬어내는 애틋한 마음은 한결같다. 졸지에 엄마 아빠와 떨어져 처음 보는 친할머니와 지내게 된 기동이가 친구들과 싸우고 억울한 소문의 주인공이 되는 과정을 안쓰럽게 지켜본다.

“심심해서 낙서 좀 한 거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마라. 이제 친구도 사귀었으니까 안 하겠지.”

검정 띠 두른 3동 벽에 ‘이 아파트 보는 사람은 다 죽는다’라고 낙서한 기동이를 2동이 감싸며 한 말이다.

상가 건물은 기동이가 친구들에게 돈을 뺏는다는 헛소문을 퍼뜨린 수한이 엄마에게 복수를 했다. 수한이 엄마가 상가 미용실에서 염색을 하고 있을 때였다. 상가가 몸을 살짝 흔들어 수한이 엄마가 들고 있던 커피를 원피스로 쏟아지게 했다. 염색이 끝나 머리를 감으려고 할 때 상가는 미용실로 연결된 수도관에 바람을 불어 넣어 물이 올라오지 못하게 막았다. “자기 자식만 귀한 줄 아는 사람들은 혼쭐이 나야 한다고.” 상가도 기동이처럼, 할머니처럼, 너무 속상했던 것이다.

푸른아파트에서 기동이는 쑥쑥 자랐다. 1동에 사는 단아와 친구가 됐고, 4동에 사는 만화가 아저씨한테 만화도 배우며 꿈을 키운다. “내가 얼른 유명해져서 할머니 트럭도 사 줄게요.” 할머니도 크게 웃었다.

이야기는 푸른아파트 재건축이 시작되면서 끝이 난다. “그동안 편하게 잘 살고 간다.” 할머니의 인사에 2동은 목이 멘 채 할머니와 기동이에게 덕담을 건넨다. “할멈은 착해서 어딜 가든 잘 살거야.”“너, 꼭… 만화가 돼라.”

이렇게 집과 정을 주고 받는 능력은 팍팍한 삶을 한결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묘약이 다. 고향 시골집만 ‘집’인 게 아니었다. 도시 변두리 낡은 아파트, 삭막하고 을씨년스러운 시멘트 건물도 얼마든지 정을 주고 삶을 누릴 수 있는 터전인 것이다. 할머니도 그렇게 말했다.

“너, 밖에 있다가 집에 들어오문 맘이 편안하지 않냐? 같은 바람이라도 우리 집에서 맞는 바람 다르고 넘의 집에서 맞는 바람이 달라야. 요것들이 그저 덩그러니 있는 것 같아도 다 보고, 지켜주고, 챙겨 준다니께.”(65쪽)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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