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자출족들이여, 시선을 뚫고 달려라

중앙일보

입력

김유미 씨는 자전거를 탈 때는 블라우스 위에 자켓이나 점퍼를 입는 편이다.


자출을 시작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도심 도로나 한강 자전거도로에서 눈에 띠는 것은 거의 대부분 남성 직장인들이다. 자전거를 타는 여성들은 보통 주말을 이용해 레저용으로 자전거를 타거나, 가까운 곳에 장을 보러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출족이 크게 늘고 있지만, 여성 자출족의 비율도 그만큼 늘고 있는 것일까. 왕십리역 근처 자택에서 장한평역 SK텔레콤 장안센터까지 매일 자출을 하는 여성 자출족, 김유미(26) 씨를 만나 자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Walkholic(이하 WH) 자출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김유미(이하 김) 직장 때문에 서울에 혼자 올라와서 산다. 그동안은 항상 지하철과 버스 같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했다. 그런데 이게 보통 힘겨운 일이 아니더라. 실제로 거리는 얼마 안 멀어도 체증이 심하고 만원 버스, 만원 지하철에서 시달리다 보니 몸무게가 38kg까지 빠졌다. 병원을 찾았더니 꾸준히 운동을 하고 식사량을 조절 하라는 얘기를 했다. 그런데 당시에 야근이 너무 많아서 따로 시간을 내 운동을 할 만한 처지가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수를 낸 게 자전거였다. 왕십리역에서 출발해서 성동구청, 청계천을 지나 동대문 홈플러스가 있는 동대문구청, 답십리역을 거쳐 장한평역 근처 회사까지 매일 30분 씩, 왕복 1시간씩 자출을 한다.

WH: 자출을 시작하고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김: 일단 생활이 많이 바뀌었다.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자전거를 타니 확실히 운동효과가 생겨서 점차 식사량도 늘었고, 몸무게도 5kg 정도 불었다. 근육량도 많이 증가했다. 43kg까지 찌운 후에는 스트레스를 받아도 더 찌지도, 더 빠지지도 않도록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일단 자전거를 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인데, 더 큰 변화가 생겼다. 일상에 활력과 경쾌한 리듬이 생긴 것이다. 평일에 자출을 하다보니 주말에는 출퇴근 코스 외에 다른 곳을 다녀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 그래서 책도 찾아보고 다른 사람들 얘기도 들어보면서 직접 자전거 끌고 여기저기 다니게 됐다. 말하자면 일부러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건강한 취미생활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 것이다.

WH: 자출을 하면서 느낀 불편한 점은 무엇입니까?
김: 자전거 자체에 대한 불편함은 없다. 대신 자전거 문화가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구나, 하는 생각은 많이 한다.
인터넷 동호회 ‘자출사’에서 활동하면서 일본이나 네덜란드에서는 자출족을 위한 시설이 참 잘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나라의 자출 현실과 자연히 비교하게 된다. 중간에 펑크가 난다거나 고장이 발생하면 참 난감하다. 출퇴근하는 중이니 그런 장비들을 늘 가지고 다닐 수도 없고. 자전거 선진국에서는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소 등에서 자전거를 잠시 빌릴 수도 있고 또 바로 수리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 우리 자출족들에게는 아직까지 꿈같은 일입니다.
또 나 같은 경우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동안 이상한 눈으로 혹은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시선을 제법 느낀다. 남성 자출족들은 이제 그런 시선을 거의 느끼지 못하게 됐다고 한다. 아마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게 아닌가 싶다.

WH: 여성 직장인으로서 복장에도 제약이 있을 것 같다. 자출 복장과 근무 복장은 어떻게 하나요.
김: 웬만하면 운동화와 바지를 입고 따뜻하게 출근한다. 직업상 언제나 정장과 구두를 신어야 해서 가방이나 자전거 앞 바구니에 구두와 정장을 담아 가기도 한다. 요즘에는 옷도 점점 두꺼워져서 짐도 만만치 않고 갈아입을 곳도 마땅치가 않아서 구두는 웬만하면 신고 가는 편이다. 정장은 가방에 따로 넣고요. 상의는 블라우스를 입고 점퍼를 입기도 한다. 메이크업도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보통은 집에서 미리 하고 나오는 편이다. 아직까지는 쳐다보는 눈들이 많아서 출근할 때 메이크업도 안하고 구두를 신고 자전거를 타면 나는 편한데, 보는 사람들 시선이 편하지 않다.

WH: 자전거를 타다보면 땀도 나고 먼지도 뒤집어 쓸 것 같다. 여성이라 더욱 신경 쓸 일이 많을 텐데….
김: 사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회사에 샤워시설과 탈의실이 없어서 숙직실이나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수정한다. 샤워를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타는 동안 땀이 너무 많이 나지 않을 정도로 속도를 조절한다. 자출 경력이 좀 있는 분들이 보기에는 정말 천천히, 느릿느릿 탄다. 일명 ‘샤방샤방’ 모드라고…. 사실 집과 회사가 먼 편이 아니지만, 맘껏 속도를 낼 수가 없으니, 2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30분 이상 걸려서 오고간다.

WH: 비가 오거나 날씨가 안 좋을 때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가?
김: 노하우는 따로 없다. 정말 날씨가 맑을 날을 제외하고는 항상 안전이 최우선이다. 비가 올 때는 대부분 자출을 포기합니다. 위험한 것도 위험한 거지만 쳐다보는 눈들이 평상시보다 더 많아지거든요. 또 자동차 운전자들이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날씨가 안 좋아서 ‘비가 올 거 같다’고 느낄 때는 안전용품을 꼭 챙긴 후 출근을 한다. 겨울에는 바닥이 많이 얼기 때문에 세발자전거처럼 천천히 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겨울에는 바퀴와 브레이크 점검을 보름에 한 번씩은 꼭 해준다.

WH: 자출을 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 달라.
김: 하루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도로가 꽉 막힌 날이었다. 어쩌지 못하고 인도로 달리게 됐다. 그때 하필이면 오토바이도 내 앞을 달리고 있었다. 행인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라 “자전거 지나갑니다”라고 말하면서 갔다. 그래도 “자전거가 인도로 왜 달려?”라는 화난 목소리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한 뒤 다시 도로로 내려왔더니 이번에는 승용차 문이 열리더라. “자전거가 도로를 왜 달려?” 인도에서는 행인 중심의 원칙에 따르는 게 맞고, 도로에서는 자동차 중심의 원칙에 따르는 게 맞다. 그런데 자전거는 어쩌면 좋은가?

WH: 자출을 시작하려는 여성들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 자출의 기본은, 여성이냐 남성이냐 하는 문제를 떠나서, 안전이다. 누구도 그걸 피해서 달릴 수는 없다. 그러니 스타일이 조금 구겨지더라도 헬멧과 장갑 같은 기본적인 안전용품은 착용을 해야만 한다. 골목길이나 좌회전, 우회전 신호가 있는 곳은 항상 자전거를 세운 다음 건너는 것도 기본이다.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아이들을 조심해서 학교 주변에서는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자전거는 자동차에 비해서 사고가 나도 경미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속도를 내다가는 생각도 못할 큰 사고를 낼 수 있다. 여성들이라면, 일단 시선에 익숙해지고 용감해지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메이크업과 복장, 샤워시설이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한편으로는 여성 자출족들이 꾸준히 늘어난다면 보완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당장이라도 플래카드를 들고 여성 자출을 홍보하고 싶지만 일단은 꾸준히 자출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워크홀릭 담당기자 장치선 charity1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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