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걱정스런 의원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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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기 도쿄특파원

"일본 정치인들에게 '그리운 옛날'은 사라졌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일본에 왔다."

일본 정부 초청으로 도쿄에 온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원이 12일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또 "일본 정치인들에게 익숙한 한.일 파이프라인은 이제 한국 정치에서 퇴장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줄곧 '새로운 만남'을 강조했다.

金의원은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에 대해 "예전에 만났는데 문법이 안 맞더라"고 했다. 말이 안 통했다는 얘기다. 아베 신조(安倍晋三.50) 자민당 간사장에 대해선 "나이는 아직 젊은데 19세기적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모리 전 총리는 한.일의원연맹 일본 측 대표고, 아베 간사장은 일 정계에서 차기 리더로 거론되는 인사다. 金의원이 어떻게 생각하든 한국으로선 중요한 외교 창구다.

따라서 한국 집권당의 의원외교단을 이끌고 온 대표가 이같이 발언한 데 일본 측 인사들은 놀랍다는 반응이다. 한 언론인은 13일 "아베 간사장 초청 만찬을 한두시간 앞두고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지적했다. 일 외무성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 정치 판도가 확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일본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金의원은 이달 초 한국을 방문한 일본 국회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영어로 "당신은 나에게 일본어로 얘기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말의 뜻은 앞으로 한.일 정치인간 만남에서 양측은 '통역을 통한 자국어'가 아니라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국제 외교무대에서 영어로 말하든, 통역을 통해 자국어로 말하든 문제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사용할 언어까지 지정하는 건 무례다. 일본 정계가 이 말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金의원은 1965년 한.일 수교를 반대했던 6.3시위의 주역이다. 그럼에도 金의원의 이번 발언은 적절치 않았다. 연금 미납 문제로 불거진 일본 정치권 내 술렁거림에 묻혀 조용히 넘어가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김현기 도쿄 특파원

*** 바로잡습니다

5월 14일자 4면 김근태 의원의 일본 방문을 다룬 취재일기 '걱정스러운 의원외교' 중 '기자간담회'를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로 바로잡습니다.

金의원이 한국을 방문한 일본 국회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영어로 '당신은 나에게 일본어로 얘기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는 부분은 일본 의원이 '일본말로 대화할 수 있는 한국 의원이 없어져서 아쉽다'는 발언에 대해 '일본어로 교육받은 세대의 정치인들이 이번 선거에서 대부분 낙선해 더 이상 한.일 양국의 정치인이 일본말로 대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요지의 발언이었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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