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일감부족 비상-적정량에 반년분 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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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국내 조선업계의 일감 부족사태가 심각해졌다.
지난해 3분기이래 1년여동안.수주불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나마 남아있는 일감(수주잔량)도.곶감 빼먹듯'해 조선업계가 내년이후 작업량부족으로 심한 경영난을 겪을 소지가 커지고 있다.
◇현황=조선공업협회에 따르면 올 10월말 현재 업계의 수주잔량은 1월의 1천3백82만보다 2백47만이 감소한 1천1백35만에 그쳤다.수주잔량은 각 조선소들이 보유하고 있는 연간 적정건조능력의 2~2.3배 정도를 적당한 수준으로 간주한다.이는 수주계약-설계-착공까지 1년,선박건조에 1년여가 걸리기 때문.
따라서 국내 조선업계의 연간 건조능력을 7백여만으로 보면 1천5백만 전후가 적정수준이다.이렇게 볼때 10월말 현재의 수주잔량은 적정수준보다 3백65만(약6개월 건조물량)이나 모자란다. 조선소별로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전체평균 1년7개월치의 일감만 확보한 셈이어서 약 6개월치가 비는 셈이다.
현대.대우.삼성.한라.한진중공업등 주요 조선업체중 실제 올 수주실적이 연초목표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곳도 있다.업계의 올수주실적은 10월까지 3백77만(36억1천만달러)으로 전년동기비 25.4%(금액 20.1%)나 줄어들었다.
◇수주부진의 원인=근본적으로는 지난해 3분기이후 지속된 엔저와 국내임금및 원자재가격 상승등으로 국내조선업계의 경쟁력 자체가 급격히 떨어진 것.올들어 세계 조선수주전에서 경쟁국인 일본에 계속 물량을 빼앗기는 이유다.
업계 분석으로는 최대 경쟁국인 일본에 비해 지난해만 해도 조선가격경쟁력은 10%쯤 앞섰으나 올해는 3%쯤 앞선 수준으로 변했다.그러나 비가격경쟁력이 일본 조선제품보다 7%쯤 뒤진 것을 감안한 한국조선제품의 종합경쟁력은 일본보다 올 들어 4%쯤뒤진 것(지난해엔 약 3% 앞섬)으로 나타났다.
최근 2~3년 사이 한국업계를 비롯,세계조선업계가 선박건조시설을 크게 늘린데다 선가가 바닥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자 선주들이 선가(船價) 추가인하를 노려 발주를 늦춰온 것도 수주부진의 원인.
아울러 신조선시장이 예상만큼 형성되지 않은 것도 이유로 꼽힌다.올 연초 업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탱커(유조선)수주가 많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빗나갔다.전세계 유조선의 50%이상이 선령(船齡) 20년을 넘긴 노후선박이기 때문.건화물 선과 대형 컨테이너선의 경우도 건화물과 정기선운임시황의 부진에 따른 선복(船腹)과잉 우려로 선주들이 발주를 꺼렸다.
◇경쟁국 일본과의 비교=일본은 지난해 한때 27만 차이로 한국에 수주잔량 1위자리를 내준 적이 있지만 지난해 중반이후 엔저효과등에 힘입어 91년이래 부동의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래픽 참조> 올 상반기 일본은 엔저의 순풍속에서 가격경쟁력을 회복,공격적 영업전략을 펼치면서 중동등 대형 선사들의 대규모 발주에 탄력적으로 대응해 수주잔량을 착실히 늘리고 있다.
올 6월말 현재 수주잔량은 1천4백84만(한국 1천1백91만). 올들어 양국의 수주량 규모도 9월말 현재 한국이 3백1만인데 비해 일본은 3배에 가까운 8백36만을 기록,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한국조선공업협회.일본 운수성 해상기술안전국 선박건조허가실적 비교).
◇전망및 대응=지난 91년 30만급 초대형 유조선(VLCC)척당 가격은 1억5백만달러였다.이후 하락을 거듭해 올해는 상반기 기준 8천1백만달러까지 떨어졌다.5년여동안 무려 33%나 하락한 선가인만큼 바닥이라는 인식은 많으나 회복 은 쉽지 않을것이란 전망이다.
대우중공업 기원강(奇源康)조선영업담당이사는“세계시장에서 국내업체들간의 과당경쟁으로 제살깎아먹기 싸움을 하는 경우도 있다”며“원가절감.생산성 향상등의 경쟁력 향상노력은 물론 제값을 받기위한 국내업체들의 자발적인 생산량 조절노력도 필 요하다”고 말했다. 조선공업협회측은“올들어 엔화약세로 국내조선업계의 경쟁력이 본격적으로 떨어지면서 수주차질도 많이 발생했다”며“이같은불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장기적으로 생산성 향상및 기술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태원.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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