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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남미 투어 마친 유승준 美현지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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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승준

오는 6월 18일 국내 개봉할 영화 ‘슈렉2’의 미국 취재를 위해 들렸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지난 주말 유승준을 만난 건 일종의 행운이었다.

영화 시사회를 마치고 만난 중앙일보 로스앤젤레스 종교 담당 유정원 기자에게서 요즘 유승준이 세계를 돌며 기독교의 말씀을 전하고, 또 지구촌에 흩어진 한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자선공연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즉각 그 선배에게 부탁을 해서 유승준을 만날 수 있었다. 아직 한국에서도 그에 대한 여론이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라 유승준은 처음에 기자를 만나기를 주저했으나 그의 현재 활동을 객관적으로 보도하겠다는 약속을 한 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로스앤젤레스의 호텔에서 그를 만났던 당시 마침 한국 스포츠 신문에는 유승준에 LA에 있는 한 실탄사격장에서 실제 총을 들고 친구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사진이 공개되면서 그를 비방하는 네티즌들의 목소리가 높았던 때였다.

인터뷰도 그 보도에 대한 얘기로 시작했다. 유승준은 아직도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인터넷에 부정적으로 공개되고, 또 그에 대한 팬들이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사실에 무척 당황해 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이날 유승준은 매우 침착했다. 기자의 궁금증에 대한 대답도 시원시원했다. 미국 시민권 취득에 따른 그의 한국 입국 금지 조치에 대해 말하는 순간 그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그날 기자에게 솔직하게 대했다.

다음은 유승준과 나눈 주요 대화 내용이다. 유승준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불과 3년 전만 해도 한국 가요계와 연예계를 대표했던 한 젊은이의 육성을 사심없이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 문화계도 감정적 호·불호 차원을 벗어나서 더욱 성숙한 단계로 진입하지 않을까. 잡소리가 길어졌다.

-아프리카·남미 등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3월초에 2주 동안 아프리카와 유럽 투어를 다녀왔다. 네덜란드에서 케냐, 우간다, 르완다를 거쳐 파리도 돌아왔다. 또 4월 8일부터 15일까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방문했다. 아프리카는 선교 차원에서다. 평소 제가 존경하는 김혜자·박상원 선배가 홍보대사로 있는 기독교 NGO인 월드비전을 통해서였다. 자신의 영향력을 좋은 쪽으로 행사하는 건 좋은 일이다.

아프리카에선 현재 주민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구축이 주요 목표였다. 좋든 나쁘든 제가 가진 게 유명세이니까 그걸 통해 소외받는 아프리카인을 돕고 싶었다. 그곳 사람들은 감기에 걸리도 약이 없어 죽을 수도 있다. 에이즈도 마찬가지다. 가난 때문에 매춘을 하는 경우도 많다. 에이즈는 가난 때문에 생긴 복합적 질병이다.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내전과 쿠데타가 계속되고 있다. 어린 소녀들이 성적 노리개로 끌려가기도 한다.

그곳에 가서 여러 시설들을 둘러보고 학용품도 증정하고 간단한 찬양도 했다. 르완다에 굴루라는 도시가 있는데 한달 전에 반군에 의해 200여명이 학살된 곳인데, 이곳도 찾아갔다. 그들에겐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된다. 한달에 29달러만 있어도 그곳 아이들을 먹일 수 있다. 네가족 식구가 한끼만 안 먹어도 그들을 살릴 수 있다.

남미는 한인 기독교 단체인 ‘갓스 이미지(GOD’s Image)‘와 동행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를 만났다. 그곳에서 찬양도 하고 공연도 했다. 그곳 교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그곳의 한인 커뮤니티는 경제적으로 죽어 있다. 1.5세, 2세들도 아이텐터티가 거의 없다. 1세와의 갭(간격)이 크다. 그 친구들에게 한국인의 아이덴터티를 심어주고 싶다.”

-미국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은 불쌍하다. 설 자리가 없다. 주류 사회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한국사람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방황하는 친구가 많다. 자기 능력과 지식을 발휘해 확실한 길잡이가 되는 사람이 드물다.

사실 미국내 1.5세, 2세는 한국의 내일이요 자원이다. 그들을 조국이 등한시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한국도 그들을 서포트해야 한다. 미국을 움직이는 주요 세력은 유대인이다. 미국 내 유대인은 본국의 시민권을 함께 갖고 있다. 외국에서도 본국의 투표권을 행사한다. 그같은 수준은 안 되더라도 한국도 해외 자원을 격려하고 도와줘야 한다. 그들의 재능을 키워주고, 영향력을 키워 한국을 도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는 앞으로 그런 다리가 되고 싶다. 1.5세와 2세들을 연결하는 고리도 되고 싶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교회에 다니는 젊은이는 4%밖에 안 된다. 부모와 장벽이 높아 대화가 안 통한다. 1세대는 타민족과 융화하지 못하고 아직 영향력도 적다.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한국에선 배척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1세들은 이곳에 와서 경제적인 공을 많이 세웠다. 인물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1.5세, 2세와의 연결고리는 허약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고리의 핵심은 교회 교육이다. 세상에 못 가르치는 가치를 가르친다. 인생의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신앙인이기에 하느님의 사랑을 전할 것이다. 13살에 이곳에 와서 원망도 많았고, 방황도 많이 했다, 한국에서 잘하고 있었는데 왜 이곳에 왔는지 고민스러웠다. 문화적 차이로 방황한 게 부지기수다. 주변에 잘못된 결정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친구가 많다.

그들은 인생의 낙오자로 찍혔다. 그런 친구들을 잡아주고 싶다. 한인 1.5세의 ‘롤 모델(역할 모델)’이 되고 싶은 것이다. 돈이나 잘 벌라고 하는 차원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덕, 윤리적으로 옳아야 한다. 한국에서도 최근 누드 열풍이 불고 있다고 들었다. 마음이 씁쓸하다, 사람의 관심을 끄는 게 그것밖에 없는가. 교회를 통해 하느님이 기뻐할 일을 하고 싶다. 문화사역이 가장 큰 코드다. 상황이 힘들지만 해와 동표가 부르면 달려가겠다. 한인 젊은이가 교회로 돌아오는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지 일하겠다.”

-브라질 공연은 어땠나.

“이틀 동안 매일 200∼300여명의 젊은이가 왔다. 교민들이 그렇게 많이 모인 것 지난 20년 동안 처음 있었던 일이라고 들었다.”
-어떤 계획이 있나.

“7월 경 중국으로 갈 생각이다. 중국에서 열심히 활동해서 미국에 진출할 계획이다. 미국 시민권을 딴 이유도 해외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아프게 했으나, 그건 그때 내린 결정의 의미를 찾아가는 단계로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제게 그런 일이 없었다면 브라질과 아프리카도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은 정말 넓고 할 일은 많다. 좁은 시야를 넓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젊은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나.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한다. 담배와 술을 하지 말라고 한다. 그건 우리 같은 한인 젊은이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빨리 영어를 배워 능숙해져야 한다. 그게 미국에 영향력을 끼츤 거다. 미국 사람이 한국을 판단하는 거는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을 보고 한다. 그래서 너희들의 한국의 미래요 얼굴이라고 말한다. 어깨가 무겁다고 말한다. 한국에선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에 비해 미국내 한인 젊은이는 축복받고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특권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담배 피고 술 먹을 시간이 없다, 영향력을 키우고 민족을 돕는 일꾼이 되라고 강조한다.”

-요즘 생활이 힘들지 않은가.

“이제 한국에 들어올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제 생각이다. 그간 나를 다시 돌아보았다. 인기와 명예 같은 것은 반성했다. 제가 크리스천임에도 하나님보다 내 마음대로 가치를 결정했다. 중요한 것 믿음과 신앙이다. 하나님이 저를 잠시 내려놓았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포인트를 혼동했던 것이다.”

-병역 기피 의혹이 짙다.

“한국과 미국의 정서적 차이가 큰 것 같다. 절대 선택이었지 기피가 아니었다. 기회는 도망가는 거다. 그런데 저는 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 저에는 두 가지의 선택밖에 없었다. 저로선 인생의 신중한 선택이었을 뿐이다.”

-하나님의 일이란.

“성경에 하나의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다. ‘돌아온 탕자’의 얘기도 있다. 제가 브라질까지 간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진짜 귀중하고 의미있는 일을 할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웃 아이들이 형이요, 오빠다. 그들이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게 바로 문화 선교의 의미다. 지금 한인 젊은이가 설 자리는 좁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생을 망칠 순 없다. 한국 자원의 손상이다. 건강하게 예수 믿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건 값진 일이다. 그게 나의 궁극적 목표다.”

-공연은 어떻게 하나

“여기의 공연 환경은 열악하다. 그래서 중국에 갈 계획도 잡아놓아았다. 교회 연합 청년 집회 같은 곳에서 공연한다. 한국에선 너무 바빠 하루 서너번도 했으나 이곳에선 한 달에, 혹은 두 달에 한번 공연한다. 몸 푸는 정도다. 그렇게 교회 무대에 서면서 내가 진짜 로 가수가 된 이유를 생각한다. 가수의 진정한 목적을 되씹는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제 사명을 다시 찾고 싶다.

차인표·신애라 선배 부부를 개인적으론 잘 모르지만 그들은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는 것 같다. 가족이 주는 그런 것 말이다. 전에는 마음이 있어도 바빠서 좋은 일을 못했다. 이제는 일의 양보다 질을 생각한다. 물질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싶다. 바쁜 인생에 여유로 갖고 살고 싶다. 그간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제게 힘을 실어준 사람들에게, 즉 그들에게 빚진 것을 꼭 다시 돌아가서 갚아야 한다. 하지만 국민이 저를 용서할 때 가능할 것이다. 제 결정에 대한 작은 열매가 맺힐 때 돌아가고 싶다.”

-2년 전 입국 금지 조치 당시 원망은 없었나.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가 혼란스러웠다. 서울에 있을 때도 매주 온누리교회를 빠지지 않고 다녔다. 지방에 가면 백댄서들과 성경을 들고 예배를 들었다. 하도 예수, 예수 하니 별명이 ‘유목사’였다. 당시 상황이 원망스럽진 않다. 한국의 청소년도 피해자다. 분단이란 현실 때문에 많은 청소년들이 군대를 간다. 그런데 누구를 향해 총을 겨누는가. 그들도 같은 민족이 아닌가.

분단의 현실이 청년들을 가장 힘들게 한다. 저에 대한 네티즌의 분노도 이해가 간다. 그 아픔의 뿌리는 분단에 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 마는 그들도 상처가 있기 때문에 욕하지 않았을까 한다. 기대가 컸던 만큼, 믿었던 만큼 실망도 컸을 것이다. 이게 끝이라면 할 말이 없으나 지금은 제 결정에 대한 과정으로 보아주었으면 한다. 이게 유승준의 다는 아니다.

그러나 공인인데도 경솔한 행동으로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정말 죄송하다. 지금은 푸념처럼 들릴 수 있으나 당시 나는 내 인생의 확실한 결정을 내릴 단계가 아니었다. 감당할 나이가 아니었다. 공인으로 경솔했다. 저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기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이 제가 감당할 만한 고난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예전처럼 방방 뛰지 못해도 내 자신을 정비해서 다시 일어설 것이다. 좀더 성숙한 자레로 노래에 매진할 수 있는 길이 속히 열렸으면 더 바랄 게 없다. 제 연애인 인생의 1라운드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로스앤젤레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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