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다녀도 손님 없어 허탕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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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9시 서울 신사역 네거리, 대리운전 기사 이지호(50·가명)씨는 쉴 새 없이 휴대전화를 만졌다. 회사에서 깔아준 ‘대리운전 프로그램’에 손님의 오더가 뜨길 기다리는 것이다. ‘딩동’, 고객 정보가 뜰 때마다 휴대전화는 울었다.

“신사역에서 금호동 거쳐 역촌동(은평구) 가는데, 1만7000원이라…. 나오는 차도 없을 텐데.”

망설이는 순간, 고객 정보가 사라졌다.

“에이, 발 빠른 친구들이 채갔구먼.”

이씨는 오후 4시에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요즘은 끼니 때우는 것도 부담이다. 지난달 그는 100만원 정도를 벌었다. 8월보다 50만원가량 줄었다.

“여름만 해도 오후 9시면 손이 붙기 시작해 새벽 서너 시는 돼야 끊겼어요. 지금은 10시가 돼도 안 붙고 새벽 1시가 되면 손이 없어요.”(대리기사들은 손님을 ‘손’이라고 간결히 부른다)

지난달엔 추석 연휴까지 겹쳤다. 30만원 적자가 났다. 통장에 있던 돈도 시나브로 줄었다. 기사는 등록된 회사에 대리비의 20%를 수수료로 내야 한다. 선납으로 내야 운전을 할 수 있다. 보험료도 기사가 6만~7만원을 부담한다.

1990년대, 이씨는 강원도 홍천에서 오리 농장을 했다. 90년대 후반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판로가 끊겼다. 근근이 버티다 2000년 농장을 접었다. 술에 절어 살았다. 같은 해, 부인과 이혼했다. 그리고 서울 논현동 영동시장에 있는 직업소개소로 왔다. 기나긴 ‘하루살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직업소개소에는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을 한 사람이 많았다. 이씨는 “요즘 들어 나이 든 사람이 다시 많아지고 있다. 대부분 운전밖에 할 줄 모른다. 택시, 아니면 대리운전을 한다”고 했다. 그는 “노숙자로 전락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며 “허” 하고 소리내 웃었다. 이씨도 택시, 대리기사를 전전했다. 모아놓은 돈으로 작은 가게를 열어봤지만 “재주가 없는 건지, 운이 없는 건지” 그마저도 실패했다. 안간힘을 써봤지만, 이 동네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올해 다시 불황이 찾아왔다.

10월의 주말, 신사역의 밤은 휑했다. 몇몇 대리기사들이 신사역을 돌아다녔다. 어떤 젊은 대리기사는 이씨에게 다가와 “대리 찾으세요?”라고 물었다. 이씨가 “나도 대리요”라고 하자 그는 어디론가 발길을 옮겼다.

이씨는 지난주까지 ‘묻지마 살인’이 발생한 논현동 고시원에서 살았다. 그 사건으로 한순간에 잠잘 곳을 잃었다. 다른 고시원에 들어가기가 겁났다. 그래서 후배의 단칸방에서 이틀간 신세를 졌다. ‘못 할 짓이다’ 싶어 잠원동에 있는 찜질방으로 향했다. 하룻밤에 6000원. 개인 짐은 아직 논현동 고시원에 있다. 통장 잔고가 바닥이 나 원룸을 얻을 수도 없다.

이씨는 얼마 전 길거리에서 옛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친구는 “꼭 연락하라”며 명함을 줬다. 사업을 하는 그 친구는 강남에 작은 빌딩도 갖고 있다고 한다. 한 손에 휴대전화를 든 이씨의 한 손은 바지 주머니 속에 있었다. 주머니 속 손은 친구 명함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한번 접고 들어가면 원룸 마련할 돈은 꿔주지 않을까”라고 말하다 담배를 꺼내 물었다.

“고시원 다시 들어가기 싫은 거 보니, 배가 아직 부른 거야. 그런데 살아보면 알아. 창문도 없는 그 방. 난 그 방을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불러. 내 인생도 이렇게 갇혀버린 거지.”

이씨는 새벽녘까지 신사역을 돌아다녔다. 손님은 없었다. 그는 재킷의 옷깃을 세웠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6000원 찜질방으로 향했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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