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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국가 신뢰 높여야 위기 풀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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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외국인들이 올해 들어 증권거래소에서 33조원, 코스닥시장에서 2조원 가까운 매도를 계속하고 있다. 먼저 외환위기 이후 환율과 주가지수 움직임을 되짚어 보자. 원-달러 환율은 2001년 4월 1365원에서 2007년 11월 899원까지 줄곧 원화 강세를 보였다. 코스피지수는 2003년 3월 512포인트에서 이중 바닥을 형성한 후 2007년 11월 1일 장중 고점 2085포인트까지 쉼 없이 달아올랐다. 그 후 1년간 급격한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4년 반 동안 307% 상승분을 감안하면 1년 만에 상승폭 (1573포인트)의 76%가 하락한 셈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때도 고점 대비 63%가 하락한 걸로 비추어 현재는 가격 측면에서만 보면 하락의 끝자락에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든다.

2006~2008년의 외국인 주식 매도는 66조원에 이른다. 외국인은 외환위기 직후에 최적의 투자국을 골라 2004년 한국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44%까지 투자했다. 그 후 3년간 한국 시장에서 가격과 환차익의 두 가지 수익을 실현하고 이탈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현재 투자 비중은 28.5%).

 지금 주변 변수만 따지면 서울 증시는 1400원대 환율과 주가수익비율(PER) 7배, 주가순자산비율(PBR) 0.8배의 매력적인 시장이다. 그런데도 외국인들은 떠나고 있다. 단지 세계적인 유동성 위기와 상대적으로 차익 실현이 쉬운 우리 증시의 특성만이 이유일까. 또 이번 위기가 해소되면 외국인들은 다시 한국에 집중 투자를 할 것인가? 필자 개인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선 전 세계적인 자산가격의 하락이 이뤄졌다. 여기에다 한국보다 매력적인 중국·인도· 러시아·브라질 같은 대체시장이 존재한다. 또 지금은 97년 외환위기와도 다르다. 당시는 글로벌 경제가 좋았기 때문에 대외 의존적 수출경제인 한국 경제는 돌파구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구촌 전체가 삐걱대고 있다. 따라서 빠른 속도의 경상수지 흑자→해외자본 유입→외환보유액 증가라는 선순환은 쉽게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의 대처 자세가 달라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경제는 최소한 1~2년의 경기 침체를 거칠 게 분명하다. 우리 수출도 내년부터 상당한 침체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 4분기에는 일시적으로 경상수지 흑자가 나겠지만 내년 이후는 장담하기 어렵다.

최근 해외 출장을 나가보면 우리의 구조적 문제를 외국인들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왜곡된 시각도 적지 않지만 우리가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중국에서 열린 ‘한국 자본시장 투자포럼’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당수 질문이 한국의 은행에 집중됐다. 국내 은행의 재무적 위험을 집요하게 캐물었다. 마음 같아선 “중국의 은행은 건전하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시장에서 중국 인민폐는 강세 통화고, 한국 원화는 약세 통화다. 2400억 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 기업들의 재무건전성, 성장성, 수익성 들을 비추어 보면 우리로선 억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끊임없이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좀 더 전략적이고 유연한 정책을 구사해주길 주문하고 싶다. 지금 한국은 ‘펀더멘털(Fundamental)의 위기’라기보다 정부와 기업의 판단 착오로 인한 ‘수급의 위기’라는 생각이 든다. 20년 이상의 펀드매니저 경험을 살려보면 우리의 주가와 환율의 경우 수급 위기로 인해 과매도된 부분은 이른 시일 안에 복구되리라 본다.

그러나 본질가치에 대한 적정한 평가까지는 상당한 기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본질가치의 적정한 승수(Multiple) 는 경제의 펀더멘털에다 국가의 안정성과 유연성·투명성이 가미된 승수가 곱해지는 것이다. 이제는 정부·기업·개인이 한 방향으로 국가적 승수를 올리기 위해 손을 맞잡고 소통하며 나아갈 때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