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칼럼>용서받지 못할 李前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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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한안경사협회로부터 1억7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이성호(李聖浩)전 보건복지부장관의 부인을 두고 갖가지 말들이 많다.진위야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어쨌든 “남편이 전혀 모르는 일”이란 부부 사이에 있기 어렵다는게 세 간의 통념인 것이 사실이다.그래서 감옥행도 마다하지 않고 스스로 쇠고랑을 찬 그녀를 .현대판 열녀'라고도 하고 전통적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중심 지배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여성상의 재현이라며 비판하는시각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아내를 감옥에 보낸 李전장관과 그의 부인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뇌물을 받은 사실을 알았거나 몰랐거나 관계없이 李전장관으로선 부인의 감옥행을 고수하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그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뇌물과 무관했다면 그는 정치인으로서의 명예를 지키려고 했는지 모른다.그 자신이 부인의 뇌물수뢰를 알고서 묵인 내지 동조했다면 그가 저지른 부정과 비리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누를끼칠 것을 두려워했거나 혹은 공직사회에 대한 불 신과 불명예를우려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일로 李전장관이 개인적인 명예건,공직사회의 명예건 그 어느 하나도 지켰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것같다. 세상 사람들이“그 사람은 정말 깨끗한데 부인이 일을 잘못 처리해 장관자리를 그만두게 됐다”거나“끝내 부인이 구속돼들어가는 걸 보니 정말 李전장관은 혐의가 없는 것같다”고 말하는 소리를 기자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떳떳하지 못한 용기없는 사람'이란 오명(汚名)이 덧씌워진 것은 아닐까.일부에서는 집안에서 차지하는 주부의 비중을 생각할 때 비록 자신이 전혀 몰랐다 하더라도“부인을 잘못 다스린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것이 가장으로서 책임있 는 행동이라는 지적도 한다.이들은 나아가.고개숙인 남자'가 양산되는 세태에 李전장관도 한몫 했다고 .분개'하기까지 한다.
뇌물을 받아 이권에 개입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그러나 이는 법의 심판으로 시비(是非)가 가려지고 그로써 용서받을 수있다.그러나 떳떳하지 못한 행동은 그 무엇으로도 용서받지 못할것이다.명예는커녕 한 인간으로서의 도덕성까지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만 꼴이 됐다.
게다가 그는 지역구 출신의 현역 국회의원이다.명예와 신뢰,명분과 책임이란 명제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되는 위치에 있는사람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李전장관을 보며.사람은 나아가야 할 때와물러서야 할 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경구가 새삼 떠올랐다.
이정민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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