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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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유럽사람들의 의식 바닥엔 자위행위를 죄악시하는 흐름이 있다.
오난이 저지른 짓에 관한 성경 구절이 영향을 미친 것일까.
구차하고 음산한 그 따위 짓 하느니 차라리 .실연(實演)'하는 것이 밝다고 여기는 행동파가 많은데다 개방적인 사회환경도 자위를 비웃는 눈으로 대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일본이나 중국엔 자위를 위한 여성용 성구(性具)가 많았다고 구르몽은 지적했지만 유럽엔 성구보다 정조대(貞操帶)가 발달돼 있었다.장기간 집을 비워야 할 때 남편들은 아내의 은밀한 곳에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는 자신이 가지고 떠났다.그 러나 이 거창한 섹스의 감방은 종이 감방이나 다름이 없었다.아내들은 즉각 여벌 열쇠를 만들어 정조대를 풀어버렸다.
남편손에 의해 채워진 정조대를 풀어버린다는 행위는 억압된 섹스에서의 해방도 의미했다.이 해방감 속에서 굳이 자위행위를 할여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서로 속고 속이는 부부의 대결 구도는어째서 빚어지는 것인가.근본 문제는 섹스에 있 는 것이 아닌가.금실이 좋은 부부간이라면 속고 속이는 번거로운 기만을 왜 하겠는가.하지만 그 금실도 마냥 영속적일 수 있을 만큼 .절대'의 것은 못되지 않겠는가.
이 세상엔 두가지 종류의 인간이 있다.여자와 남자다.이 두가지 형은 영원한 동반자인 동시에 영원한 대결자다.남녀가 얼림으로써 갖은 생산이 이뤄지는 동시에 남녀의 갈등으로 갖은 파괴도생겨난다.오이스터와 랍스터 때문에 부부싸움을 했 다는 아들의 푸념을 들은 탓일까.을희는 굴 생각을 했다.
굴은 .교대성자웅동체(交代性雌雄同體)'다.암.수의 기능이 한몸 안에 있어서 어느 기간엔 암컷이 되고 어느 기간은 수컷이 되는 식으로 번갈아 성(性)이 뒤바뀌는 것이다.
9월에서 4,5월까지 굴은 몽땅 수컷이요,5,6월에서 8월까지는 암컷으로 바뀐다.영어로 R자가 안 든 달,즉 메이(5월).준(6월).줄라이(7월).오거스트(8월)까지 굴 먹기를 삼가라는 속설은 여기에 근거한다.
R자가 들어있는 달인 셉템버(9월).악토버(10월).노벰버(11월).디셈버(12월).재뉴어리(1월).페브러리(2월).마치(3월).에이프럴(4월)이면 굴은 고환(睾丸)을 갖추게 됨으로써 정자(精子)를 생산한다.그래서 맛이 좋다.그리 고 5,6월부터 8월까지 난소(卵巢)가 생겨 굴은 난자(卵子)로 채워져 그 난자가 자람에 따라 희끄므레해지고 맛도 덜해진다.생식은 이때 비로소 진행된다.미리 생겨있던 정자가 난자와 합치게 되는 것이다. 인간도 이처럼 일정기간 남녀의 성이 교체되는 교대성자웅동체라면 남녀간의 대결 구도는 해소될 것이 아니겠는가.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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