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다) 꾸리찌바 ② 당장 손해보고 오래 잘사는 법을 실현하다

중앙일보

입력

유럽, 캐나다, 일본 등 일명 ‘뚜버기’ 여행자들에게 찬사를 받는 많은 환경도시들이 있지만 ‘그중 최고는 단연 꾸리찌바’라고 환경연구가 이노우에 씨는 말한다. 버스 외에 다른 교통수단이 별로 없으므로 시내 중심부든 언저리든 관계없이 모두 공기가 맑고, 중요한 기관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으므로 서울이나 맨해튼 같은 메트로시티의 혼잡한 인파에 넋을 잃는 일도 없다. 도시 어느 곳이나 콧노래 부르며 살살 걸어 다니기에 안성맞춤인데 꾸리찌바의 모습을 한 눈에 시원하게 보고 싶다면 서쪽 교외에 있는 전화국을 찾아가면 된다. 이곳은 이미 꾸리찌바의 유명한 관광 명소인데 방문자들은 전화국의 탑에 올라가 도시의 전경을 감상하곤 한다. 도시의 고층 건물이라고 해봐야 20층 정도인데, 이런 고층건물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 남동쪽으로 펼쳐져 있고 그 밖의 지역은 온통 일이층짜리 집들뿐이어서 도시 구조가 흥미롭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시내 곳곳을 물들이는 녹색지대다. 이 아름다운 녹색 경관은 30년 동안 진행해온 도시계획의 산물이라고 한다.

바리귀 공원

공원의 분리수거함

꾸리찌바에 아름다운 공원이 많은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딱히 공원을 조성하려는 목적으로 공원조성에 눈을 돌린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도시의 슬럼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이 더욱 컸다. 지난 1960년대 공업화와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도시 유입 인구가 급속도로 늘었고, 빈터로 남았던 공공용지들이 빠른 속도로 슬럼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를 잠시만 방치해도 엄청난 속도로 인구가 증가하여 정치꾼들에게 이용당하기 일쑤여서 당국으로서는 큰 골치였다. 매번 정치꾼들에게 속아서 부화뇌동하며 이용만 당하는 슬럼가 사람들을 지켜보며 당국은 이들이 무리를 이루지 못하고 차라리 흩어져 지낼 수 있도록 강력한 법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도 그들의 슬럼가 형성은 막을 수가 없었다.
혁신적인 변화는 1970년대에 생겼다. 시 당국에서는 이전보다 획기적이고 간단한 방법으로 슬럼가를 없앨 계획을 세웠다. 차후 슬럼가가 만들어질 것 같은 공공용지가 보이면 그 자리에 무조건 공원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당국에서는 아예 발 벗고 나서서 하천이나 산자락 근처를 답사하여 빠른 속도로 공원을 조성해나갔다. 그 결과 슬럼가가 들어설법한 장소는 모두 고급 주택가로 거듭났고 서민들도 동네 곳곳에 흩어져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꾸리찌바를 물들이고 있는 수많은 공원들의 사연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하여간 그 많은 공원 중에서 시장의 아틀리에가 있는 바리귀 공원이 있는데 이 공원이 바로 슬럼가를 방지하기 위한 도시 공원화 정책의 첫 번째 공원이다.
꾸리찌바 전화국 탑 위에 올라, 발아래 펼쳐진 융단 같은 숲과 공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슬럼가 형성을 막아내려고 당국에서 얼마나 애썼는지 짐작되기도 한다. 그곳 어디에선가 꾸리찌바의 시장이 거닐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곳 시장들에게는 묘한 전통이 있는데, 오전에는 맑고 시원한 숲 속에 들어가서 시정을 고민하고 오후에 출근해 필요한 업무를 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을 자리매김한 장본인은 1992년까지 시장을 지낸 도시연구가 ‘자이메 레르네르’다. 그는 1971년부터 세 번을 잇달아 시장을 역임한 인재로 꾸리찌바 도시계획이나 환경정책 대부분이 그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곳의 도시계획은 지난 60년대 고가고속도로 건설이 한창일 때 세워졌다. 당시 레르네르는 시내 대학의 건축학과 학생이었는데 그는 고가도로가 머잖아 사람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거라고 확신했다. 비싼 차를 타고 씽씽 달려 다니는 것이 얼핏 근사해보일지 몰라도 그것이 곧 사람의 땅을 차들의 도로로 변모시켜버릴 것이고 이어서 사람들이 걸어 다닐 땅마저 모두 빼앗겨 매우 사소한 산책의 행복마저도 누릴 수 없게 될 거라 예측한 것이다. 모두가 자본주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을 때 벌써 그런 생각을 했다니, 참으로 대단한 안목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그에 그치지 않고 자신과 뜻이 비슷한 동료 및 선후배들과 의견을 나누며 이후 끈기 있는 환경정책을 펼친다. 그 뒤로 시장을 역임한 인물 역시 그와 뜻을 함께 하는 친환경주의 도시연구가이니 꾸리찌바의 성공적인 도시계획이 과연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확실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이 펼치는 정책의 모든 원칙은 ‘최대한 돈을 들이지 않고 합리적인 정책만으로 살기 편한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녹색교환’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었고, 버스 하나로 도시의 모든 교통망을 구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1973년부터 자동차 통행금지 도로를 지정해 보행자의 권리와 편의를 보장할 정도로 녹색 마인드가 앞섰지만, 모든 정책들이 쉽사리 자리 잡은 것은 아니었다. 이웃 도시의 개발 모습에 눈이 뒤집힌 토착민들과 상점 주인들의 반발이 거셌다. 가게 앞으로 차를 들이지 못한다니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싸움이 커져서 상인들이 단합하여 시위를 했지만, 시에서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보행자가 즐거운 마음으로 마음껏 걸어 다녀야 장사도 더 잘 된다고 상인들을 끈질기게 설득시켰다. 그러다가 설득이 어려우면 차를 대지 못하도록 콘크리트 화단을 길가에 만들어버리는 등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상가 주변에 만들어진 콘크리트 화단으로 인해 시청과 상가 주민들과의 격한 싸움이 나날이 이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싸움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은 시장의 말대로 정말 매출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꾸리찌바를 여행하다 보면 길 곳곳에 콘크리트 화단이 많이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전 세계의 도보여행자들은 ‘보행자를 위한 꽃길’이라 칭송하며 레르네르의 친환경 정신을 가슴에 새긴다.

오페라 하우스 향하는 꽃길

협조 / 이노우에 토시히코, 사계절 출판사 (번역 김지훈) 주요 참고문헌/ 세계의 환경도시를 가다 (이노우에 토시히코ㆍ스다 아키히사 편저) 기타 참고문헌 /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 (박용남), 친환경 도시 만들기 (이정현), 도시 속의 환경 열두 달 (최병두), 친환경 도시개발정책론(이상광)

워크홀릭 담당기자 설은영 enyo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