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解法 묘한'3角게임'-北,한국에 직접 사과않겠다 불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잠수함 사태 해결을 둘러싸고 남북한과 미국이 묘한 3각 게임을 벌이고 있다.사과의 수위와 경로.대상을 둘러싸고 각자 다른카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내용적으로 북한과 미국이 한 조가 돼 한국을 설득하는 양상을 보이는 부분이다.정부는 잠수함 사건을 매듭짓기 위해 북한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등 납득할 만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다만 사과 내용과 형식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그러나 사과.재발방지 약속은 한국 정부에 대한 것이어야 하며 내용은 이번 사건의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나야한다고 밝히고 있다.즉 북한이 정전위 채널을 통해 사과하거나 사과의 수준이 유감표명 정도라면 받아들일 수 없 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이같은 주장은 이번 잠수함 침투사건이 정전협정 위반측면외에도 우리측 영해를 침범한,즉 주권 침해 성격을 띤다고 보기 때문이다.따라서 북한의 사과는 두가지 측면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며 지난 94년 발생한 미군 헬기 격추사건 해결 과정이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당시 미국은 토머스 허바드 국무부 부차관보를 대통령 특사로 파견,북한측과 협상을 벌였고 판문점에서는 북.미간 장성급 군사접촉을 통해 사과한바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사과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지난달 말 미국을 방문한 북한의 이형철 미주국장은 마크민튼 미 국무부 한국과장과 만나 이같은 뜻을 확실히 전달한바 있다.이형철은 그러나 “유감표시를 할 수 있다”며 “이번 사건은 군부의 행동이라는 사실을 유념해 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지 10월29일자 4면,11월11일자 1면 참조> 정부는이형철의 이같은 주장이 정전위 채널을 통해 유엔사측에 유감을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한마디로 한반도 평화회담의 당사자인 미국에는 어느 정도 표시가 가능하나 한국에 사과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따라 서 정부는 “받아들일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고 이후 북한으로부터의 교섭은 전혀없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나마 .유감'운운 하는 것도 미국에 대해서다.한국에는 “우리(북)가 피해자니 가해자인 남조선이 사죄해야한다”는 어이없는 짓거리를 서슴지 않고 있다.19일 판문점 군사정전위 비서장회의에서 유감표명 한마디 없던 북한은 이날 한술 더떠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 대표를 잠정적으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남한이 북한과 대화를 않겠다고 했으니 자기네도 못할바 없다는 식이다.그런데도 중재 역할을 맡은 미국은 긴장 국면이 하루빨리 수습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간의 경수로 공급에 관한후속 의정서 가서명을 서두르는 것이나 빌 리처드슨 하원의원의 방북을 결정한 것은 이같은 움직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핵동결 해제를 위협한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대해 윌리엄 페리 미국방장관이 “북한의 위협을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남북 쌍방의 대립이 계속 상승작용을 일으킬 경우 제네바 합의 자체가 깨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기초한 것이다.
북한이 이 시점에 미국측 특사를 불러들이는 이유는 간첩 혐의로 억류중인 에번 헌지커를 풀어주되 국면 전환을 위한 다양한 포석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또 24일 열릴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 결속과 한국 입장에 대한 압력의 의미도갖고 있다.

<최상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