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압박' 강도 싸고 韓.美 시각차-미국 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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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은 답답하다.이대로 가면 북.미 기본합의의 틀 자체가 흔들리고 북한의 핵개발동결 약속 파기가 빤히 보이는 까닭이다.미국이 더욱 당혹스런 이유는 한국정부가 북한이 어떻게 나오리라는것을 잘 알면서도 강경자세를 누그러뜨릴 조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잠수함사건에 대해 북한의 공식사과와 재발방지를 얻어 내겠다는 한국정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대북(對北)경수로사업과 연계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미국은 남한의 불안에 대한 공감보다는 동북아의 안정 혹은 북한의 핵개발동결을 발등의 불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이 잠수함으로 첩보원을 한국에 파견해 온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17일 뉴욕 타임스의 보도에도 미국의 그런 견해가 배어 나온다.잠수함이 좌초해 한국에 발각된게 처음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도 북한이 어떤 집단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처럼 지금까지 이뤄 온 모든 대화의 성과물을 원점으로 돌리겠다는 듯한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워싱턴에서는 북.미 기본합의 2주년을 평가하는 정책세미나가 연이어 열렸다.미국정부 당국자들도 참석한 회의에서 한국정부의 자세를 정면공박하는 분위기는 없다.오히려 클린턴정부가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오 고 있다.그러나 한국정부의 대안 없는 대북 강경자세가 북.미 기본합의 이행에 장애가 된다는데 공감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인 것은 틀림없다. 북한은 한국정부의 공개사과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이 새로운 자세를 보이지 않을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리라는 전망이다.심지어 북한이 김일성 조의문제와관련해 한국정부에 사과를 요구하고 남한이 받아들이 지 않은 것이나,이번에 북한이 한국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나 다를게 없다는 비유도 등장했다.
미국정부 당국자들은 지난 9월이후 한국정부의 대북자세가 다분히 미국에 대한 불만과 불신의 발로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윈스턴 로드 차관보와 존 도이치 중앙정보국(CIA)국장의 방한(訪韓)을 통해 대한(對韓)공약을 재확인하고 제임스 레이니 주한대사가 워싱턴 프레스클럽 발언을 통해 한국정부의 입장에 지지의사를 천명한 것등은 한국정부를 진정시켜 북.미 기본합의가 좌초하는 것만큼은 막아 보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미국정부의 입장은 분명하다.이번 사건으로 북.미 기본합의가 깨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이에 따라 미국은 한편으로는 북한을 달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대북 강경자세를 진정시켜 보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윌리엄 페 리 국방장관이 북한의 핵동결 파기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한 것이나 미.일 정상들이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서 한국의 입장을 완화하려 노력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는 것은미국의 이같은 입장과 맥락을 같이한다 .
어쨌든 대북전략에 뾰족한 대안 없이 한.미정상회담이 열려 그결과 구체적 알맹이 없는 공조만을 재확인하는데 머무른다면 양국간의 불편한 관계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워싱턴=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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