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불거진 美하원의원 리처드슨 訪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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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빌 리처드슨 미국 하원의원이 조만간 다시 평양에 들어간다.
시기는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를 계기로 마닐라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24일 직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슨 의원은 개인적으로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또 북한통이다.94년 이후 이미 여러 차례 북한에 다녀왔고 올 들어 지난 5월에도 미군유해 송환문제를 협의한다며 평양에 들어갔다.지난 9월 또다시 방북(訪北)을 추진했으나 한국정부가강력히 반대한데다 잠수함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무 산됐다.그런데미국 대통령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그가 다시 방북하는 것이다.그것도 잠수함사건에 따른 남북관계 경색이 전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부득불 평양에 가겠다는 얘기다.
미국은 간첩혐의로 붙잡혀 있는 미국청년 에번 칼 헌지커의 석방을 방북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몇 가지 걸리는게 있다.「평범한」 청년 1명을 데려오기 위해 리처드슨 같은 거물급이 꼭 움직여야 하느냐는 점이다.
그는 클린턴 2기내각에서 에너지장관 설까지 있다.또 하나는 시기문제.잠수함사건을 매듭짓기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한.미공조가중요한 시점이다.
이런 것들이 헌지커 석방을 위해 단순히 개인차원에서 방북한다는 말을 믿기 어렵게 한다.미국대통령 특사설은 그래서 나온다.
헌지커 송환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사실은 「딴 짓」을 하려는 게아니냐는 것이다.자국시민 보호를 위해 간다는데야 막을 명분이 없다.하지만 정부가 겉다르고 속다른 미국의 「이중 플레이」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아직 한.미간에 그 정도 신뢰관계는 있다고 보지만 굳이 우리를 속여 가면서(헌지커 이외에) 딴 얘기를 한다면 어쩔 수 있겠느냐』는 게 정부 당국자의 솔직한 얘기다. 리처드슨 의원은 평양당국자들과 만나 잠수함사건으로 꼬인남북한,북.미 관계의 매듭을 푸는 문제를 당연히 집중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사과와 재발방지 요구에 대한 적절한 「제스처」나 「성의표시」를 북측에 촉구하면서 동시에 「당근」도 제시할 것이다.
부분적 경제제재 완화나 북.미 접촉수준 격상등이 예상되고 있다.리처드슨 의원의 방북은 잠수함사건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강경드라이브에 대한 미국의 반작용으로 볼 수도 있다.그런 점에서 리처드슨의 평양행은 표면적 공조에도 불구하고 속으로는 심화하고있는 한.미 갈등을 상징한다는 지적이다.

<배명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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