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역사의 진실규명은 신문의 責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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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주 최규하(崔圭夏)전대통령의 강제구인과 증언거부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세가지 아쉬움을 느꼈다.
첫째,16년전의 사건을 놓고 이른바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자 재판부가 그토록 노력(?)하고 있는데 그동안 신문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사실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일은 재판부에 앞서 신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임은 새삼 강조할 나위도 없을줄 믿는다.만일 신문이 이러한 책무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더라면 16년이란 긴 세월 동안에 최규하씨의 인터뷰가 불가능했으리란 법도 없을 터인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지금이라도 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여러가지로 자성(自省)해야 할 것이다.
비록 재판에서는 그의 증언이 불발로 끝났더라도 역사 앞에서 언론이 그의 침묵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어서도 안되고, 만들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는 이른바 기록성(記錄性)이라는 측면에서 최규하씨와의 증언대에서 오간 상황적 이야기들이 충실하게 문답식으로 보도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있었던 「12.12,5.18공소심」의 일곱가지 쟁점사항에 대한 검 찰과 변호인단의 구두공방(口頭攻防)도 보다 현장감(現場感)을 살리면서 신문의 장점인 기록성을 발휘하기를 기대했었는데 그게 그렇지가 못했다. 내가 여기서 기록성을 계속 강조하는 까닭은 방송과의 경쟁에서 신문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바로 기록성인데 그것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패배를 자초할 우려가 있다는 것을 경계해서다.사실 이번 재판은 방송에서도 매우 무게 를 실어 보도했지만 법정 내부의 그림이 없는 방송보도는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 못되었다.그것은 도리어 신문보도를 돋보이고 선호(選好)하게 하는 것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상황을 문답식으로 정리해 생동감을 주지 못했다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셋째는 재판의 「쇼」적인 측면을 철저히 파고드는데서 남긴 아쉬움이다.이번 재판은 최규하씨의 증언이 가장 핵심적이고 그의 증언이 없는 재판은 국민이 납득할 수 없으리라는게 재판부의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그러나 결과는 「 증언」이 없는 재판이 돼 버렸고 남긴 것은 「쇼」적인 효과밖에 없었다.그「쇼」를 연출한 참뜻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었는지는 보다 밀도있게 보도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비록 全.盧 두 전직대통령의 볼썽사나운 몰골로 말미암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이미지가 엄청나게 훼손됐다손 치더라도 역사와정치와 법률의 측면에서 신문은 「쇼」적인 흥분에 휘말리기보다 냉철한 자세로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노력을 기울 여야만 하리라고 믿는다.
지난주의 보도 가운데 안경사협회와 이성호(李聖浩)전보건복지부장관 관련기사에서 중앙일보는 크게 돋보였다고 평가해야 할 것같다.특히 보건복지부의 안경테 관련 업무일지와 안경사협회보의 기록사진 등은 무엇이 「진실」인지를 시사해 주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첫 보도에서 안경사협회로부터 돈받은 정치인들을 익명으로 기사화했다는 점이다.물론 익명의 보도는 개인의 명예를 존중하고 보도의 신중성을 기한다는 측면에선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그러나 이 사 건의 성격으로미루어 볼 때 애초부터 실명으로 보도했어야만 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나라의 이른바관(官)의 위력이다.본시 관이란 한자(漢字)는 입(口)이 두 개로 이루어진 글자인데 그 상징성을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입이 두 개 있으니 엄청나게 먹성 이 좋고,입이두 개 있으니 두 입으로 각기 다른 말을 할 수 있고,두 입으로 힘을 쓰면 한 입 가진 백성은 맥을 못추게 마련이 아니겠는가.관의 힘으로 장사와 사업이 좌지우지(左之右之)되는한 이러한글자의 상징성이 지니는 함축성(含 蓄性)을 외면하기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다.그렇기 때문에 백성의 입으로서의 신문의 역할이더욱 기대되는 것이다.
중앙일보의 특징의 하나는 충실한 국제뉴스 보도라고 일컬어지고있거니와 이와 관련해 지난주 캐스퍼 와인버거 전미국방장관 등의신저(新著)인 『다음 전쟁』의 보도는 단연 빼어났다.그림과 곁들인 한반도에서의 가상(假想)전쟁이야기는 충격 적인 것이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 전쟁」배경 설명 누락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와인버거가 워싱턴의 내셔널 프레스클럽 조찬회견에서 행한 이 책의 여러가지 배경설명 내용이 빠져버렸다.와인버거는 북.미(北.美)핵합의 문제와 북한의 남침 가능성에 대해 재임 시절의 경험까지예로 들면서 설명 했다고 한다.
국제뉴스 커버와 관련해 또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우리나라의 유시훈(柳時熏)7단이 일본 바둑 왕좌전에서 승리해 왕좌위(王座位)를 따냈다는 기사가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본사 고문) 이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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