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 시시각각

마법 리더십의 레시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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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중국에서 연주한 최초의 서양 관현악단이다. 핑퐁외교가 일으킨 해빙 바람을 타고 1973년 ‘죽(竹)의 장막’을 넘었다. 상임 지휘자 유진 오먼디가 단원들과 함께 공연장을 돌아볼 때 마침 중국 교향악단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했는데 영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1악장을 마친 중국 지휘자가 오먼디에게 한 수 가르침을 청했다. 오먼디가 지휘봉을 잡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연주가 갑자기 훌륭해진 것이다. 중국인 단원들조차 이것이 과연 자신들 연주인가 의심할 정도였다. 필라델피아 단원들 또한 입이 벌어졌다. 위대한 마에스트로의 진가를 재확인하고 그와 함께 연주한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게 리더십이다. 지휘봉 하나로 평범한 연주자들의 잠자던 재능을 일깨우는 마법이 바로 리더십이다. 지금 우리,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혀 아파하고 있는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 바로 그런 마법 같은 리더십이다. 이미 경험한 바 있기에 더욱 그립다. 난백난중(難伯難仲) 강적들을 차례로 꺾고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김경문 야구나, 고질적 문전 헛발질을 극복하고 월드컵 4강에 오른 히딩크 축구 모두 두 감독의 리더십 없인 불가능한 것이었다.

알고 보면 다 그렇듯 그 마법 리더십의 레시피도 특별한 게 아니었다. 잠재력 한 큰술과 신뢰 두 큰술이 전부다. 잠재능력이 없으면 리더십도 어쩔 도리가 없다. 타조가 가르쳐도 오리는 오리일 뿐이다. 신뢰는 벡터다. 심리학 용어로 방향성 있는 행동력이다. 중국 연주자들이 오먼디를 믿지 않았다면 그의 지휘봉 끝을 열심히 따르지 않았을 터다. 신뢰가 두 큰술인 건 그것이 양방향인 까닭이다. 선수는 감독을 믿고 감독은 선수를 믿어야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거다.

이제 우리가 가진 재료를 도마 위에 올려놓을 차례다. 잠재력은 충분하다. 처음보다는 목소리가 좀 작아졌지만 외환보유액은 충분하다고 한다. 외환위기 때의 27배고 세계 6위 수준이라는 거다. 기업과 금융권의 체질도 그때보단 훨씬 강해졌다. IMF에서도 10년 전과는 다르다고 확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신뢰만 넣으면 된다. 그런데 그게 문제다. 오래전에 뚜껑이 열려 향이 다 날아가버린 까닭이다. 올 초 인수위 때만 해도 강력하던 향이었다. 물론 그래서 싫어하던 사람도 있었지만 5년 동안 물린 음식 모조리 비우고 새로운 밥상을 차려낼 것 같았다. 하지만 밥상을 차리기도 전에 쪽박이 다 깨졌다. 뽑힌 전봇대 하나 말고는 상에 놓인 게 없다.

욕하자고 옛 허물 들추는 게 아니다. 신뢰 위기의 뿌리가 그 허물에 닿아있기에 하는 소리다. ‘고소영’ ‘강부자’란 볼멘소리가 나왔을 때부터 쪽박엔 금이 갔다. 그때 제대로 금을 메우고 뚜껑만 잘 닫았어도 신뢰의 향기가 지금처럼 희멀겋지는 않았을 터다. 어떠한 선동에도 국민들이 촛불을 들지 않았을 테고 불가피한 감세·규제완화 조치들을 ‘그들만의 잔치’로 보지 않았을 터다. 봉창 두드리는 100대 과제 발표에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을 테고, ‘펀더멘털’ 튼튼하다는 우리 경제가 이처럼 진창에 빠지지는 않았을 터다.

 우리의 대통령은 어제 시정연설에서도 ‘위기가 곧 기회’라고 했다. 그 명제는 대통령 자신에게 먼저 진리다. 지금의 위기상황이 짓밟힌 신뢰를 되찾을 절호의 찬스란 말이다. 기회를 잡으려면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기 수첩에서만 인물을 찾을 게 아니라 내 편이 아닌 사람부터 찾아야 한다. 그래서 거국적인 신뢰회복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흰소리는 신뢰를 더욱 허옇게 만들 뿐이다.

두보(杜甫)는 말했다. “기수를 잡으려면 먼저 말을 쏴라. 도적떼를 없애려면 먼저 두목을 잡아라.” 신뢰를 얻으려면 그걸 잃은 요인을 먼저 없애야 한다는 말이다. 두보는 그다음 할 일을 이어 말한다. “활을 쏘려면 가장 강한 활을 당겨라. 창을 쓰려면 가장 긴 창을 써라.” 늪에 빠진 시장의 구조 요청이 그렇다.

이훈범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