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록&論>떠오르는 록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시경(詩經)』의 모시대서(毛詩大序)에 음악과 사회간의 관계를 꿰뚫는 다음과 같은 경구가 있다.
「잘 다스려지는 시대의 음악이 평안하고 즐거운 것은 정치가 조화롭기 때문이고,어지러운 세상의 음악이 원망스럽고 노여운 것은 그 정치가 어그러짐 때문이며,망한 나라의 음악이 슬프고 근심에 잠겨 있는 것은 그 백성이 곤궁하기 때문이다 .」 우리나라의 경우 첫번째 구절은 세종조에나 거슬러 올라가야 손톱만큼이라도 적용되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지만,세번째 구절은 우리의 대중음악사가 본격적으로 기술되기 시작하는 식민지시대의 애상과 비탄의 음계를 떠올리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그러나 이 가을에 정작 주목하고 싶은 것은 두번째 구절이다.
정치의 어그러짐이 분노의 음악을 부른다는 것.그것은 모순이 몇겹으로 착종돼 있는 사회적 상황은 필연적으로 그에 걸맞은 음악의 출현을 야기한다는 말일 터이다.
90년대로 접어들면서 비약적으로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지금.
여기의 록음악과 그것에 대한 무수한 담론은 이제 서구의 유수한백인음악 영웅에 대한 동경의 서사시가 아니다.그것이 비록 이 땅에서 만족할만한 대중적인 참호를 구축하고 있다 고 보기에는 여전히 허약하지만 록의 본능적인 동물성은 파시즘의 폭력에 의해오랫동안 구금되어 왔던 대중음악 본연의 자발적인 에너지를 비로소 풀어헤치는 것이다.
하지만 록의 전략적인 기호인 저항이라는 화두는 결코 정치적인메시지로만 환원될 수 없다.음악에서의 진정한 저항은 하나의 음악적 텍스트를 둘러싸고 있는 중층적인 콘텍스트 사이의 긴장과 갈등에서 태어난다.따라서 음악가에게 저항의 출발 은 바로 자신이 소속돼 있는 음악사의 상투적인 관습에 대한 반성적인 성찰이다. 96년 가을,다양한 음악적 입장을 가진 신인,혹은 기성 록 밴드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이들은 비좁고 누추한 지하클럽 혹은 동숭동의 소극장에서,아니면 캠퍼스의 운동장에서 24시간 꺼지지 않는 여의도의 불야성을 향한 분노의 공동체 를 기도한다. 80년대까지 이 땅의 록은 풍기문란의 예비검속 대상이거나 곧 기득권 계급으로 전환할,서구를 거대한 이념적 모델로 간주하는 청년 엘리트의 전유물에 불과했다.그러나 이제 권력의 폭행과 기성세대의 사시(斜視)속에 누추한 계보학을 가진 한국의 록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서구」와 「저항」,그리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본질인 문화산업 「상품」이라는 세겹의 강박관념 속에서 이 젊음의 미학은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예술적 독자성을 증명해야 한다.무차별적인 공격도,참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반란도,나아가 저항이라는 슬로건에 대한 저항도 다 좋다.다만 그 모든 저항과 전복의 코드가 자신의 내면에서 충일하게 솟아오른 것이라면,그리하여 그 충동의 동력이 한탕주의의 스타 시스템과 동어반복의 죽은 언어들의세계를 잠깨우는 것이라면.
◇약력 ▶62년 부산생▶서울대 국문학과 졸업▶영화단체 「장산곶매」대표 역임▶계간지 「리뷰」 편집위원 강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