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하늘밑>'에이즈의 잔 다르크' 바바라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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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에이즈보균자라는 선입견만 없다면 바바라 상송(사진)은 뭇남성이 한번쯤 연애하고픈 아리따운 프랑스 여성이다.1백80㎝의 늘씬한 몸매와 또렷한 이목구비는 꽃다운 21세의 나이와 잘 어울렸다.「20세기의 천역(天疫)」이 할퀴고 간 상처 는 어디에도남아있지 않았다.
5년째 보균자라는 딱지를 달고 다니지만 그녀는 우수가 깃들이고 조숙한 인상만 빼면 남들과 똑같았다.오히려 줄곧 뿜어내는 환한 미소는 빛을 연상했던 막연한 「기대감」을 타박하는 듯했다.『처음에는 두려웠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지요.그 러나 병에 걸린 이상 스스로의 삶과 싸워 개척하는 수밖에 다른 선택이 없지요.』 파리에서 1백㎞쯤 떨어진 사르트르에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던 그녀는 만 17세가 되던 해 에이즈에 감염됐다.
「사춘기의 10대가 항상 사랑을 갈망하듯」 그녀도 우연히 사귀게 된 남자친구와 뜨겁게 타올랐다.첫 성경험도 갖게됐다.
그러나 그 대가는 너무 컸다.2년여동안 집안에 틀어박혀 인생을 포기한 채 세상과의 인연도 끊었다.인생의 전기는 94년 프랑스에서 에이즈예방을 위한 범국민 캠페인이 벌어지면서 찾아왔다.모든 TV방송국이 동시에 생중계한 이 캠페인에 개 막 증언자로 나와달라는 제의가 들어왔던 것이다.고심끝에 그해 4월7일 전국민이 시청한 이 행사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보균자라는 사실을 세상에 공개했다.
『세상은 에이즈가 매춘부.마약중독자.동성연애자들만 걸리는 더러운 병으로 보지만 실은 저같은 경우가 더 많아요.제 또래의 청소년들이 제 불행을 답습하지 말도록 힘이 되자는 생각이 수치심을 떨쳐버리게 했지요.』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엮은 『17세의사랑은 진지할 수 없다』를 펴냈다.
에이즈보균자의 진솔한 이야기라는 배경덕택에 큰 인기를 끈 이책은 네덜란드.독일.벨기에.스위스.스웨덴.덴마크.브라질.한국.
일본에서도 번역.출간됐다.지난 6월엔 그녀를 주제로 『나의 17년』이라는 제목의 TV영화가 제작될 정도로 사 회적 반향이 컸다. 현재 파리 남부 오를레앙에서 「모자없이는 절대로」(모자는 콘돔을 상징함)라는 에이즈예방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이 단체의 회장이자 의사인 에릭(33)과 2년전부터 동거하고 있다.짓궂게 부부생활에 대해 묻자 『수혈등 특수한 상 황이 아니면 남에게 전염시키지 않고 성관계도 콘돔만 사용하면 정상인과다를 바 없다』고 태연스럽게 받아넘겼다.
『감염된뒤 보통 10년정도 더 살지만 언제 닥칠지 모를 인생의 마지막이 항상 두려워요.직업도 갖고 남편과 정상적인 가정을꾸미고도 싶어요.』 하지만 상송은 내일의 불확실성이 가장 무섭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 파리=고대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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