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패션의 미래를 말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서울패션위크 3일째인 지난 20일 SETEC 국제회의장에서는 ‘글로벌 패션 포럼’이 열렸다. 세계 패션시장 속 한국의 위치를 진단하고 발전 가능성을 점쳐본 자리다. 포럼에는 세계 패션 업계의 유명 인사 3인이 참여, 한국 패션산업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열띤 주장과 토론이 오갔다. 패션 컬럼리스트이자 파리에서 최초로 열린 필름 페스티벌의 큐레이터인 ‘다이앤 퍼넷(Diane Pernet)’, 도쿄에서 활동중인 트렌드&마케팅 분석 전문가 ‘니콜 폴(Nicole Fall)’, 그리고 한국인 디자이너 지해의 파리 오트쿠튀르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이끈 아트디렉터 ‘펠릭스 부코브자(Felix Boukobza)’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윤경희 기자

 아트디렉터 펠릭스 부코브자(Felix Boukobza)

 

치과의사, 오페라가수 등 특이한 이력을 지닌 크리에이티브 패션 디렉터 펠릭스 부코브자. 한국 방문이 서른번에 이를 정도로 남다른 ‘한국 사랑’을 과시하는 그다. “한국은 너무도 아름다운 요소들로 가득한 나라다. 디자이너 지해의 파리 오트쿠튀르 컬렉션을 도우며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한국 특유의 매력을 더욱 잘알게 됐다.”

 한국 디자이너와의 작업 경험을 토대로 그는 한국 패션시장에조언을 던진다. “패션의 정수이자 파리 패션의 자존심과도 같은 오트쿠튀르 컬렉션에 한국인으로서 작품을 선보인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지해가 오트쿠튀르로 성공할 수 있었던것은 바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본보기로 한국 시장이 도약하기 위해 시급하게 재정비해야 할점은 바로 ‘오리지널리티’를 찾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한국은 해외 유명브랜드의 디자인을 베끼는 행위, 그리고 ‘짝퉁’ 시장이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날 때다. 패션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패션에 이끌려가는 모양새가된 지금의 악순환을 멈춰야 한다.” 그는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밀려오는 명품브랜드를 상대로 한
국의 자체적인 명품 브랜드를 탄생시킬 것을 제안한다. 유난히 브랜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각성을 요구하는 것. “한국의 뷰티 브랜드나 질 좋은 가죽 잡화 브랜드도 국제적인 마케팅 전략이 따라주고 해외에 널리 홍보가 된다면 얼마든지 세계적인 명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패션 평론가 다이앤 퍼넷(Diane Pernet)

세계적인 유명 패션 블로그 ‘쉐이디드 뷰 온 패션(A Shaded View on Fashion)’을 운영하는 다이앤 퍼넷은 세계의 패션 소식을 가장 빠르게 전하는 패션 평론가다. 전직 패션 디자이너이자 포토그래퍼이며 국제패션필름페스티벌을 주최, 패션계의 최전방에서 뛰어온 그는 “미디어야 말로 패션의 앞날을 결정짓는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모델에게 옷을 입혀 런웨이 무대에 올리는 것은 패션을 보여주는 방법의 일부일 뿐이다. 오늘날 미디어의 활용은 패션 경쟁력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됐다. 패션을 보여주는 짧은 다큐멘터리나 단편 영화만으로도 패션 감성 전달 및 홍보, 마케팅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가 전망하는 서울패션위크의 미래는 어떨까. 미디어를 활용하여 적극적인 홍보를 할 것을 그는 조언한다. “패션을 사랑하는 이들라면 누구나 그들의 컬렉션이 뉴욕이나 밀라노, 파리 등 세계적인 무대의 그것처럼 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패션 종주국의 세계적인 패션 위크가 그 자리에 서기까지 축적된 시간을 단숨에 만들어낼 수는 없다. 먼저 한국의 패션을 세계 시장에 알리는 것이 우선이다. 세계적인 패션 관계자, 기자들을 끊임없이 초대하고 알려라.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라. IT강국으로서 모바일 미디어를 활용해도 좋고 영화도 좋다. 미디어야말로 여러가지 제한적 상황을 뛰어넘어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 패션을 즐길 수 있게끔 해줄 것이다.”

 트렌드 분석전문가 니콜 폴(Nicole Fall)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컨설팅을 담당하는 마케팅 에이전시 ‘파이브 바이 피프티(Five by Fifty)’의 창립자 니콜 폴은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에서 12년째 살고 있는 영국인이다. 패션 컬럼니스트로도 꾸준히 활동중인 그는 서울패션위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일반인들을 위한 패션쇼’라고 말한다. “뉴욕이나 파리의 그것처럼 패션 전문가들만의 축제가 아닌 일반인이 함께 즐기는 패션위크가 필요한 때”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일본의 ‘도쿄걸즈컬렉션’은 내수 시장을 목표로 10대후반부터 30대 초반의 저·중소득을 대상으로 하는 패션위크다. 방금 전 무대에 오른 옷에 대한 설명과 구매 방법이 실시간으로 휴대폰에 뜨는 시스템까지 갖춰 성공리에 이어지고 있다. 패션쇼라는 것이 보통사람에게 멀게만 느껴져서는 패션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쇼를 보고 누구나 감동을 받고 이것이 소비로 이어지는 구조야 말로 패션 시장 활성화의 최적화라 할 수 있다.”

 그는 한국이 미래의 패션 수도가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고 자신한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중간 위치이자, 나아가서는 북미와 유럽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입지적 이점이 크다. 또 아시아에서 한류라는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다른 문화와 나라의 디자인을 한국에 맞게 다듬고 적용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일반인을 위한 패션쇼로서의 차별성만 갖춘다면 서울패션위크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패션위크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