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남산 체계적 관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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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선구 사진부 기자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가 들립니다. 요즘 들어 부쩍 처음 듣는 새소리가 많아요."

남산에서 운동을 하던 한 시민의 말이다. '딱따구리'라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도심에서 보기 힘든 새일 뿐 아니라 곤충을 먹이로 하는 새이기 때문이다. 한때 당국은 소나무를 해치는 솔잎혹파리 구제를 위해 해마다 엄청난 양의 농약을 뿌려댔다. 이로 인해 곤충의 씨가 말랐고 생태계가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그 후 곤충을 먹이로 하는 새가 사라졌다.

기자는 딱따구리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메고 남산을 뒤졌다. 남산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새로 조성된 습지에는 올챙이.실잠자리.소금쟁이가 보였다. 1급수에서만 사는 도롱뇽 알도 있었다. 오색딱따구리가 나는 모습도 포착됐다. 깊은 산 계곡 주변에서 산다는 큰유리새도, 남산 생태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흰눈썹붉은배지빠귀도 찾았다. 1997년 남산에 방사된 꿩도 자리를 잡았다.

전문가들의 견해는 의외로 조심스러웠다. 하나같이 "지금부터가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이제 겨우 생태계의 기초을 갖췄을 뿐' 이라는 것이다. 신문 보도에도 신중해 줄 것을 당부했다. 올챙이 등의 사진을 찍은 장소가 알려지면 사람이 몰려들고 이제 막 살아나려는 환경이 망가질 우려가 있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남산은 도심의 '허파'다. 역사적으로, 정서적으로 서울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남산의 관리는 이에 미치지 못했다. 90년 이전에는 생태조사 기록을 찾기 힘들다. 동식물을 포함한 조사는 93년이 마지막이다. 10년이 넘도록 남산의 공식적인 생태조사가 없었던 것이다.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남산을 가꿔 나가야 한다. 환경에 관한 모든 분야가 망라된 전문가 그룹이 참여하는 체계적인 생태조사가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남산 생태계 회복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남산이 서울을 조망하는 전망대로서의 역할에 그칠 게 아니라 도심 속 생태공원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변선구 사진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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