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택의 자동차 디자인 읽기] 약은 약사에게, 디자인은 디자이너에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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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현대 제네시스 쿠페右의 말은 명쾌하게 들리지 않는다. 최초의 후륜구동 쿠페이고, 전에 없이 강력한 엔진이라고 말하려는 것 같기는 한데, 불편한 눈과 작은 입으로 웅얼거린다. 게다가 투스카니의 흔적마저 보인다. 제네시스 쿠페라면 제네시스의 후광이 비춰야 마땅한데 말이다. 강력한 3.8L 303마력, 혹은 2L 터보 210마력 엔진이 들었으면 입도 좀 크게 벌려야 한다. ‘악!’ 하고 벌려도 그 맹렬한 엔진을 식힐 수 없을 텐데 ‘오’하고 오므린 입은 답답하다.

야심 차게 개발한 후륜구동 골격도 잘 표현되지 않았다. 오버행(앞바퀴에서 범퍼까지의 길이)이 짧은 후륜구동 차의 특성이 잘 안 나타난다. 힘의 원천인 뒷바퀴 부근 근육도 부실하다. 준마의 허벅지처럼 단단하게 표현됐어야 하는데, 심술궂게 커진 뒷좌석 유리창과 얇아진 C필러(측면 유리창 끝과 뒷유리창 사이에 있는 철판)가 힘을 빼놨다. 빨래를 짜는 것처럼 꼬여 있는 측면 라인은 속도감 있어 보이라고 멋 부린 스케치처럼 보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엔지니어들은 ‘현대가 작정하고 만든 후륜구동 쿠페’라는 문구에 방점을 쿡 찍었는데, 디자이너들은 작은따옴표 하나도 못 찍고 할 말을 못한 것 같다.

기아 디자이너는 잘했고, 현대 디자이너는 못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두 조직은 건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일하면서 자동차를 함께 이야기한다. 단절된 조직이 아니며, 우열반으로 나눈 건 더더욱 아니다. 둘의 차이는 디자이너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 자동차 디자이너들의 안목은 세계적이다. 그들이 회의 시간에 문서 귀퉁이에 끼적거린 스케치는 정말 멋있다. 그 그림을 보고 “왜 이런 차 안 나오나” 탄식했던 일이 엊그제 같다. 기아차는 그 그림을 디자인 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양산까지 옮겨갔다. 이에 비해 제네시스 쿠페는 디자이너의 스케치 위에 상품기획자의 요구와 경영진의 고집, 엔지니어의 논리가 무겁게 올려져 있는 느낌이다. 약은 약사에게, 디자인은 디자이너에게 믿고 맡기자. 디자인이 끝내주는 차를 디자인할 사람은 디자이너밖에 없다.

전 기아차 디자이너(월간 GQ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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