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개혁'과 '자연성장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짚신장사 하는 큰 아들,나막신장사 하는 작은 아들을 둔 어머니 이야기가 가르치는 지혜는 지금 우리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날이 개면 큰 아들의 짚신장사가 잘 되고,비가 오면 작은아들의 나막신장사가 잘 된다고 보면 된다는 식의 「세상만사 보기 나름」이라는 낙관 전향(轉向)이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게다가 낙관하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이 더 진정한 문제다.
우리는 지금 휴전선 저편으로부터 노동1호 미사일을 내년이면 실전에 배치한다는 북한 정권의 광란성(狂亂性) 전쟁위협을 겪고있다.바로 얼마전 잠수함 침공을 해온 저들이기에 이것을 그냥 위협만으로 보고 있을 수는 없다.특히 그 잠수함 대원들의 집단자살을 본 우리는 저들이 「민족 전체의 자살」도 서슴지 않을 수 있는 진짜 「막가파」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미국의 어떤 전문가들은 전쟁이 시작되면 북한이 화학과 생물무기를 쓰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근자에 보도됐다 .
한편 이쪽은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중병을 경제 뿐만 아니라정치와 문화,이 모든 분야의 구석구석에서 단단히 앓고 있다.내공(內功)과 외공(外功)을 집중하지 않는다면 낫기는 커녕 점점심해갈 조짐이다.중병이 경제에서만 유독 눈에 띄는 까닭은 우리나라에서는 정치.경제.문화 가운데 오직 경제만이 그래도 잘 해왔기 때문이다.튼튼해 보이던 녀석이 앓으면 병은 사람들에게 그만큼 더 겁을 준다.
고비용 저효율은 경제 내부에서 생긴 병이 아니다.이 병은 실은 정치와 문화에서 온 병이다.경제라면 저효율은 저비용일 수밖에 없다.나라안팎 시장의 압력이 그렇게 밖에는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나는 달포전 부산에 가려고 김포공항에서 소지품검사 차례를 기다리느라 줄을 서 있었다.그때 요즘 대통령후보설로 자주뉴스에 물결을 일으키는 한 국회의원이 수행원 다섯명을 거느리고특별안내를 받으며 검사 따위는 일절없이 번쾌(樊쾌)같이 안으로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내 관심은 오로지 한가지 밖에 없었다.평생을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저 사람이 수행원을 다섯씩이나 거느리고 비행기를 타고쏘다닐 돈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고 있을까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그 돈의 출처는 틀림없이 부패다.정치권력이 부 패라는 금고에서 1억원을 뽑아 쓰면 그 부패가 경제 전체에 파급하는 비용은금액으로 쳐 그 백배 천배에 이른다.부패처럼 확실하고 번식력 높은 고비용 발생 장치는 없다.만일 그런 세력을 쓰는 국회의원이 생각에 잠기거나 다른 승객들과 인사말을 나누며 혼자 줄속에서 있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 되면 그것만으로 경제는 고비용에서벗어날 계기가 마련된다.
문화는 어떤 영향을 경제에 미쳤는가.한가지만 예로 들자.대학교는 학생을 어떻게 뽑고 그 이전단계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길래사교육비가 한해 17조원이나 드는가.이렇게 돈을 들여 교육해도국내에서만 공부해서는 국제수준의 학자는 어느 분야에서도 나오지못하고 있다.이 낭비를 경제가 모두 떠받쳐야 하니 무슨 수로 그 고비용을 담당할 것인가.저효율을 고효율로 고쳐 나가면 우리경제가 지금 같은 고비용도 감당할 수 있다고 말 하는 사람이 있다.그렇지 않다.경제가 잘 돼 생기는 경제 내적인 고비용은 경제의 고효율이 감당할 수 있지만 경제 외적인 고비용의 독자적이고 악순환적 확대재생산을 무한정 감당할 수 있는 고효율 경제란 있을 수 없다.
이런 경제외적 고비용이 경제 안으로 침투해 생긴 것 가운데 남한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대규모 난관이 된 것이 바로 노사문제다.노사분규를 놓고 말한다면 고임금은 다른 고비용의 결과이자원인이다.불행한 일이지만 이른바 「3제(制)」와 「3금(禁)」을 어떤 식으로도 법제화하는 것만으로는 내년의 노사분규를 막을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정치와 문화가 부과하는 고비용은 「제도개혁」이라는 외공으로 막아야 한다.경제 내적인 고비용은 이른바「자연실업률」과 「자연성장률」에 경제성장률을 맞추는 내공으로써해결해야 할 것이다.고도성장은 우리 경제가 추구해야 할 가장 큰 목표임에 틀림없으나 「과도성장」은 적극적으로 피해야만 고비용과 그에 따른 노사분규를 막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낙관보다 실천이 중요한 때다.실천이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나는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정성을 말한다.휴전선 남쪽에서 노사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북한은 우리가 핵무기를 가지는 경우보다 훨씬 더 얌전 해질 것이다. (논설고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