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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묘기, 천상의 판타지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SUNDAY


태양의 서커스 ‘알레그리아’
12월 31일까지 잠실종합운동장 내 빅탑
평일 오후 8시, 토 오후 4시·8시,
일 오후3시·7시(월 쉼)
문의 02-541-3150

지난해 ‘퀴담’으로 국내 문화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공연단체 ‘태양의 서커스’가 이번 달 15일 다시 한국을 찾았다. ‘서울디자인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잠실종합운동장의 서측 공터에 2500석 규모의 하얀 천막 공연장이 세워졌다. 이번 작품 제목은 ‘알레그리아’로, ‘환희’라는 뜻의 에스파냐어다.

1994년 캐나다에서 초연되어 65개 도시에서 4000회 공연, 1000만 명 관람 기록을 세운 작품이다. 올 초까지 남미 순회를 마치고 14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특히 음악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55주간 빌보드 월드 뮤직 차트에 오르고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된 전력이 있다.

줄·천·그네 타기와 텀블링, 횃불·훌라후프·리본의 저글링, 균형 잡기와 신체 비틀기 등의 레퍼토리는 비슷하지만 지난해 ‘퀴담’보다는 좀 규모가 작고 광대들의 코미디가 늘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는 투어 공연은 전용 극장에서 하는 상설 공연에 비하면 소규모일 수밖에 없다. ‘태양의 서커스’는 세계 각국에 17개 공연을 올리고 있는데 그중 상설 공연은 9개이고, 또 그 가운데 6개는 환락의 도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있다. 수중 잠수부가 등장할 정도의, 입이 쩍 벌어지는 무대들이다.

‘태양의 서커스’는 기술도 물론이지만 예술성이 높은 공연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공연자들은 전통적 의미의 아티스트보다 올림픽 체조 메달리스트 등 선수 출신이 많지만 작곡·연출·무대 등은 최고 수준의 예술가들이 참여한다. 그런데 이들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철저히 대중을 위한 예술을 추구한다. 예술가들의 시선은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관객에게 고정되어 있다. 이번 ‘알레그리아’에서도 기술을 뽐내고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찬사를 요구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관객을 무아지경의 판타지로 이끌고 감동에 떨게 하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는 엔터테이너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 준다.

관객의 기대가 모아지는 지점은 주로 공중곡예 같은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자’ 하는 쪽이지만 실제로는 광대들의 뛰어난 코미디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고 공연자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에너지에 절로 탄성이 터진다. 감동을 배가하는 것은 곡예의 난이도가 아니라 말할 수 없이 에로틱한 분장과 자세, 상상키 힘든 스토리와 안무의 전개, 동원된 첨단 테크놀로지에 대한 놀라움이다. 두 시간 반을 거기에 푹 빠져 있다가 서커스의 하이라이트, 공중그네를 피날레로 공연이 끝나면 천막을 나서는 관객의 목청은 쉬고 손바닥은 얼얼하다.

이수영 객원기자 uchat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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