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자 보호할 ‘안전 장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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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태원동에 사는 이범영(42·가명)씨는 지난 추석 때 고향에 다녀온 뒤 상조(相助) 서비스 가입을 놓고 고민 중이다. 지방에 홀로 계신 아버지가 돌아가실 경우 외아들인 자신이 장례를 혼자 감당하기 부담스러워서다. 특히 케이블TV나 인터넷에 범람하고 있는 상조회사 광고를 볼 때마다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이씨는 “상조 서비스에 가입하는 게 께름칙하다”고 말한다.

이씨가 고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상조 서비스에 가입하는 게 정말 유리한지, 어떻게 해야 믿을 수 있는 회사를 고를 수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다. 최근 뉴스에선 ^경로당이나 복지회관을 돌면서 노인들을 현혹해 부실 상조 서비스에 가입시켰다 ^상조회사 사장이 부도를 내고 부금예수금(회비)을 챙겨 달아났다 ^위약금이 과도해 계약 해지 때 말썽이 생겼다는 등의 부정적 얘기도 들린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외면할 수만 없는 게 현실”이라며 상조 서비스 광고를 접할 때마다 유심히 살펴본단다. “TV 광고를 봐라. 은근히 효심을 자극해 내가 불효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괜찮은 공기업에 다니는 대학 동창도 동료들끼리 단체 가입했다고 하더라. 이럴진대 누구든 망설이지 않겠는가.”

장례 서비스 일체 제공
상조업은 미리 일정한 금액을 내면 결혼·장례 등 가정의례 때 관련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일컫는다. 하지만 국내 상조회사 대부분은 장례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대개 회원이 월 2만~10만원씩 회비를 납부하고 장례를 치를 때 관련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계좌당 240만~400만원대 상품이 대부분이다. 가령 360만원 상품이라면 월 3만원씩 10년간 회비를 내되 장례가 발생하면 가입 직후 언제라도 불입금에 상관없이 약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서비스 내역은 관(棺)·수의·상복 같은 장의용품을 제공하고 장례지도사·도우미·복지사 등 전문 인력과 운구차량을 지원한다. 최근엔 장례행사 앨범, 인터넷 추모관 제작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또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약정 대상자를 바꿀 수 있다. 한국상조연합회 정명근 사무총장은 “선불식 할부 거래로 장례 서비스를 구입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단 납입 도중 상조 서비스를 받으면 미납 금액을 한꺼번에 내야 한다.

그렇다면 상조 서비스는 꼭 필요한 것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서비스의 장점을 부각시킨다. 현대종합상조 최명호 상무는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갑작스럽게 상(喪)을 당했을 때 당사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며 “상조 서비스에 가입하면 장례 전문가로부터 체계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언제든지 정해진 가격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가계에도 도움을 준다고 덧붙였다. 보람상조 임희택 차장은 “장의용품을 대량 구매하기 때문에 시중가보다 30%가량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하는 게 가능하다”며 “푼돈을 내면 목돈이 들 때 부담을 덜어주는 든든한 상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있다. 장례업협회 관계자는 “상조 서비스를 이용해도 장례식장 시설 대여료는 따로 내야 한다”며 “상조회사 간 과도한 영업 및 광고판촉 경쟁 때문에 소비자에게 오히려 불리한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제대로 혜택 받을 수 있나
업계에선 상조회사가 전국적으로 300개가 넘고 가입 회원도 100만 명을 웃돌 것으로 추정한다. 회원당 연 30만원가량 회비를 납부한다고 가정하면 3조원 시장이 형성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업체 대부분은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산 70억원 이상, 회원 10만 명 이상인 업체는 10개 미만이다. 상조업체들은 대개 20~50명의 본사 인력을 두고, 영업사원·장례지도사·도우미 등과 연계해 사업을 한다. 일부 업체는 “영업 인력이 1만 명, 직영사업소가 300곳”이라고 자랑하지만 과장된 측면이 있다.
상조회사의 본거지는 영남이다. 40년대 일본에서 태동한 상조 서비스를 본떠 80년대 초 부산에서 업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2~3년 전부터 중견 탤런트를 내세워 수도권에서 회원 모집을 하고 있는 회사들도 대개 부산·경남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업계 수위(회원 수 기준)를 다투는 보람상조와 현대종합상조도 각각 부산과 울산에서 출발했다. 업계 관계자는 “가구당 가입률이 부산은 13%, 마산은 12%에 이른다”며 “서울은 아직 1% 정도여서 성장성이 높다”고 말했다.

상조회사는 아직 별도의 법적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다. 자본금 5000만원만 있으면 관할 시·군·구와 세무서 신고를 거쳐 상조회사를 ‘뚝딱’ 만들 수 있다.

정부의 감독 기능이 없다 보니 서비스 내역이 표준화돼 있지 않고 확인하기도 어렵다. 업계 상위권 회사들조차 자사가 직영하는 장례식장이나 서비스 센터를 방문해야 상품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다. 판촉 카탈로그,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제시된 서비스 내역은 두루뭉술하기 일쑤다. 업체마다 ‘최고급 대마 수의’‘오동나무 고급관’이라고 광고하지만 가격과 원산지 등 구체적 내용은 밝히기 꺼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5만원짜리 유골함이 20만원대로, 중국산 중가 수의가 고급 수의로 둔갑하기도 한다.

중앙SUNDAY가 국내 주요 상조회사 8곳이 공개한 지난해 매출과 서비스 건수를 토대로 1회당 장례비 지출액을 계산해 보니 평균 150만원이 채 안 됐다<도표 참조>. 상조회사는 장례 서비스 집행금액을 매출로 잡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관리의 사각지대이다 보니 개점휴업 상태인 업소가 100개는 넘을 것”이라며 “규제를 통해 소비자 신뢰를 얻는 게 상조 서비스 시장이 성장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상조 서비스는
1980년대 초반 일본 통해서 부산에 상륙. 보통 240만~400만원을 약정해 월 2만~10만원씩 불입해 장례 때 관련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받도록 설계돼 있다. 전국적으로 300여 개의 업체가 난립, 자본금을 확충하고 부금예수금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등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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