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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뜰 자리라도 표시 받자” 새벽부터 3000명 장사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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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23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동대문구체육관에서 열린 한 행사에 3000명이 넘는 사람이 몰려들었다. 대부분 할아버지·할머니지만 휠체어를 탄 20대 남성과 40~50대 주부도 눈에 띄었다. 오후 1시에 시작하는 행사인데도 이른 아침부터 줄이 길게 늘어섰다. 제주도에서 왔다는 한 할머니는 오전 5시에 체육관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60대의 한 남성은 “오전 9시30분에 왔는데 ‘오후 4시’ 표를 받았다”며 난감해했다.

이날 행사는 ‘뜸사랑’이란 단체가 주최한 ‘무극보양뜸 자리잡기’. 직접 뜸을 떠주는 것이 아니라 뜸 뜰 자리를 유성 사이펜으로 체크해 주는 것이었다. 뜸사랑은 올해 만 94세의 구당(灸堂) 김남수(사진) 옹이 회장으로 있는 침뜸 치료 봉사단체다.

무극보양뜸이란 ‘건강의 기본을 간편하게 지켜낼 수 있다’는 뜸 방법으로, 김옹이 평생의 임상시험을 통해 고안해 낸 것이다. 뜸사랑의 조건원 사무처장은 “원래 2000명 정도를 예상했는데 사람들이 몰려들어 번호표를 3000번까지 나눠줘야 했다”며 “이마저 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우성을 쳐 혼났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20일 오후 부산 수정동 부산일보 강당에서 열린 김옹의 ‘침뜸 이야기’ 무료 강좌에도 1000명이 넘는 사람이 몰렸다. 이날 행사에도 입장하지 못한 수백 명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김옹은 다음달 5일 부산, 6일 제주도에서도 강연회를 열 예정이다.

‘구당 김남수 신드롬’이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 추석 한 방송사에서 특집으로 ‘침뜸 이야기’를 방영하면서부터. 이틀에 걸쳐 김옹이 시술하는 침과 뜸의 효험을 보여준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 10.7%를 기록했다. 추석 특집 프로그램 중 2위였다. 12년 전 발간된 김옹의 저서 『나는 침뜸으로 승부한다』도 덩달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한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개원한의사협회에서 김옹이 ‘구(灸·뜸)사’ 자격증 없이 ‘침(鍼)사’ 자격증만으로 불법 뜸치료 행위를 했다며 고발한 것이다. 김옹은 결국 의료법 위반으로 10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한의료계의 고발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김옹과 그의 지지자들이 한의사들에게 본격적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17일에는 ‘침뜸 치료를 받기 원하는 환자들의 모임’이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침구사 제도를 부활해 환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에 같이 참석한 김옹은 당국의 자격정지 처분이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기자는 22일 청량리에 있는 김옹의 침술원을 찾았다. 김옹은 “구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면 우리나라에 뜸을 뜰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1943년 침술원을 연 이후 지금까지 65년 동안 자격정지를 받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62년 의료법 개정으로 침구사 자격 제도가 폐지됐다. 이에 따라 기존 침구사 면허를 가진 사람과 한의사만이 침과 뜸을 시술할 수 있게 됐다. 대한침구사협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침사를 포함해 침구사 면허를 가진 사람은 41명에 불과하며, 이들은 대부분 김옹처럼 80~90대의 고령이다.

관련 제도 폐지로 고사돼 가던 침구사의 명맥을 제도권 밖에서 이어온 대표적 인물이 김남수옹이다. 김옹은 자신의 뜸사랑 조직 안에 1년 과정의 ‘정통침뜸교육원’을 만들어 침술인을 배출해 오고 있다.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교육을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약 4000명이 과정을 수료했다. 김옹은 “침뜸 교육을 받은 사람은 양의사 200명을 비롯해 국회의원·교수·변호사·과학자 등 거의 모든 직업이 망라돼 있다”며 “한의사와 대통령을 제외하면 없는 직업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뜸사랑은 현재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감사원을 포함, 전국 26개소에서 침뜸 무료봉사실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여의도 국회의사당에는 그간 고정적으로 김옹의 침뜸치료를 받아온 의원만 수십 명에 이른다. 봉사실은 김옹의 제자들이 전담하고 있으며, 김옹도 침술원 진료가 없는 화·목·토·일요일에 전국 봉사실을 순회하며 환자들을 돌본다.

침뜸봉사실 운영은 1일부터 전면 중단됐다. 김옹이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데 대한 항의 표시다. 그는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이라며 “다음달부터는 사법처리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봉사실을 무조건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옹이 침뜸으로 치료해 준 사람 중에는 저명인사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청와대로 김옹을 불러들여 조깅하다 다친 다리에 침을 맞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당시 붙여준 별명이 ‘한번침’이다. 김옹의 침을 한번 맞고 나면 통증이 눈 녹듯 사라진다고 해서 지어준 이름이다. 75년 장준하 선생을 만나 허리 치료를 해주며 인연을 쌓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도 10·26 직전까지 김옹으로터 수시로 불면증 치료를 받았다. 김지하 시인도 김옹의 침뜸치료를 받은 뒤 침뜸 애호가가 된 대표적 인물이다. 금호그룹(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고 박정구 회장 등 재계 인사들도 김옹을 자주 찾았으며, 최근에는 수영선수 박태환도 발바닥 티눈을 김 옹의 뜸술로 제거할 수 있었다. 전국 26개 침뜸 무료봉사실은 김옹의 능력을 높이 산 기업인들의 후원이 있어 가능했다.

그는 100세에 가까운 고령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자격정지를 받기 전까지 침술원에서 매주 월·수·금 사흘 동안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쉬지 않고 하루 50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점심시간은 단 15분뿐이다. 가까이에서 본 김 옹의 피부는 건강한 50~60대와 비슷했다. 고령의 흔적이라고는 옆얼굴에 조금 피어난 검버섯과 다소 떨어진 청력이 전부였다. 인터뷰는 2시간 동안 진행됐지만 김옹은 지친 기색이 전혀 없었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매일 아침 팔·다리에 뜨는 보양뜸이 전부라는 게 김옹의 설명이다.

그는 “그동안 몰려든 환자들 때문에 편히 쉴 수가 없었는데, 한의사들이 알아서 자격정지를 시켜주니 고마울 뿐”이라고 헛웃음을 지으면서 “나의 자격을 없애 침뜸치료를 못하게 한다면 이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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