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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외환위기때 昌 도운 ‘과거’ 안 묻고 ‘코드’도 버렸던 DJ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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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위기는 되풀이되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의 경제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대중 전 재통령은 97년 외환위기 때 국민의 힘을 결집하고 직접 발로 뛰며 활로를 찾았다. 80년 '부실 경제'를 인수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물가 안정'을 지상 목표로 내걸고 국민을 설득했다. 협조하지 않는 사람들은 힘으로 눌러 위기를 타개했다. 중앙SUNDAY는 두 전직 대통령의 위기관리 리더십을 분석했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시계추를 거꾸로 돌려 현대사에서 2008년 10월과 유사한 시점을 찾는다면 1997년 10월 전후가 될 것이다. 한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전 위기가 심화되고 있던 상황이 11년 전 가을이었다. 한국 경제는 말이 아니었다. 시장은 공포감에 질려 있었고, 시중엔 돈이 돌지 않았다. 주가는 곤두박질하고 환율은 불안했다. 아시아 외환위기가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한국이 금융위기의 다음 번 희생자라는 달갑지 않는 예고가 해외 투자은행들 사이에 넘쳤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1997년 11월 당시 김영삼(YS) 대통령이 김대중(DJ) 국민회의 대통령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외환 안정을 위해 금융개혁 법안 처리를 도와 달라”고 요청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니면 DJ가 아예 총대를 메고 금융개혁 법안을 처리했더라면.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평생을 라이벌로 살아온 YS와 DJ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비범함을 보여 주지 못했다. YS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DJ는 ‘야당인 내가 나설 이유가 없다’는 태도였다. 금융개혁 법안은 끝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한국 국가 리더십의 의지와 역량의 한계였다. 외국 자본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런 가정도 오늘을 위해 해볼 만하다. 99년 10월 이전에 YS 정부가 부실 기업들을 과감하게 도려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국민기업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던 기아차를 원칙대로 처리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나 YS 정부는 부실기업 정리를 우물쭈물했다. 정치권의 후원 사격과 포퓰리즘 여론을 등에 업은 기아차에 질질 끌려 다녔다. 당시 YS는 기업 부도 처리를 극도로 꺼렸다. 그해 1월 한보철강 부도 파문과 차남의 구속을 지켜봐야 했던 YS로선 부도의 후폭풍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이런저런 상황이 겹치면서 대한민국은 IMF 관리체제로 치달았다.

위기가 닥쳤는데도 지도자가 그에 걸맞은 비상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 나라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11년 전 외환위기가 그랬다.

대통령에 당선된 DJ가 건네받은 금고는 텅 비어 있었다. 대선 투표날인 12월 18일, 외환보유액은 39억 달러. 연말 외환보유액 추정치는 ‘마이너스 6억 달러~플러스 9억 달러’였다. 말 그대로 파산 일보 직전이었다. 그로부터 3년8개월 뒤 DJ 정부는 IMF로부터 빌린 195억 달러를 모두 갚았다. 예정보다 3년 가까이 앞당긴 조기 상환이었다. 한국은 IMF 구제금융을 받은 국가 중 가장 성공적으로 재기했지만 국민이 치른 비용은 컸다. 중산층은 무너졌고 빈부격차는 벌어졌다. 공적자금 168조원을 만들기 위해 국민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외환위기 극복의 영웅은 국민이었다.

국민은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다. 달러를 벌자며 장롱 속에 넣어둔 돌반지와 금가락지를 꺼내왔다. 노동계는 말만 꺼내도 질색하던 정리해고 도입을 수용했다. 이런 노력과 헌신은 벼랑 끝에 섰다는 위기감 때문에 가능했던 측면이 있다. 명분이 서면 똘똘 뭉치는 한민족 특유의 분위기도 한몫했다. ‘6·25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라는 비상 상황도 IMF가 권고했던 수많은 구조조정에 유리한 토양이 됐다. 이해집단의 반발이 없진 않았지만 환란 극복에 필요하다는 명분을 능가하진 못했다. 그 결과 은행·기업 퇴출 등 평상시엔 상상도 못했던 구조조정이 진행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난파선의 키를 잡은 리더는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김 대통령에겐 그와 공동정권을 구성한 산업화 세력,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와 박태준 당시 자민련 총재가 있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취임도 하기 전에 각계각층과 만난 ‘국민과의 대화’에서 DJ는 “금고가 비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실업자가 1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다. 실업자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리해고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그는 “외국자본이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게 해주지 않으면 절대 안 들어오겠다고 한다. 나는 오랫동안 근로자를 위해 왔지만 (정리해고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못 박았다. 실상을 숨기거나 부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리고,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분명하게 밝힌 다음 국민에게 고통 분담을 호소한 것이었다. 정적들도 DJ의 행보를 인정했다. 행사는 지상파 방송을 통해 전국으로 생중계됐다.

꼭 필요한 사안은 집요하게 챙겼다. 금리 인하가 그런 사례다. DJ는 금리가 높아 중소기업이 도산한다고 봤다. 고금리는 IMF와의 합의 사안이었지만 기회 있을 때마다 경제부처에 대놓고 금리 인하를 당부했다. IMF를 찾아가 미셸 캉드쉬 총재로부터 금리 인하 동의를 받아내기도 했다.

사람을 잘 쓴 것도 주효했다. DJ는 ‘코드’보다 ‘능력’으로 인물을 발탁하려고 애썼다. 당시 경제팀은 공동정부를 구성한 자민련 몫이었다. 인선도 자민련 의견이 대부분 반영됐다. DJ 자신도 코드에 얽매이지 않았다. 단적인 사례가 1기 경제팀의 핵심인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경우다. 두 사람은 DJ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심지어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대선 때 적진인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진영을 도운 ‘과거’가 있었지만 불문에 부쳤다. 비상경제대책위원장이었던 김용환 당시 자민련 부총재의 건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규성 장관에겐 임명장을 주면서 “일면식도 없지만, 일 잘한다고 해서 뽑았소”라고 격려했다. 경제부처 장관들이 소신껏 실력 있는 기술자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영향이 컸다.

그때도 경제부총리는 없었다. 하지만 경제팀이 현안에 대해 엇박자를 내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DJ가 ‘총괄은 이규성, 구조조정은 이헌재, 예산은 진념’ 식으로 각 부처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80년대 후반 재무장관을 지낸 이규성도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 장관은 2~3일에 한 번은 경제장관 회의를 열어 현안을 조율했다. 툭하면 주말에도 모여 ‘생각’과 ‘입’을 맞췄다.

‘내 사람’이라고 무조건 감싸지도 않았다. ‘DJ노믹스’의 산파역을 한 ‘중경회(김대중 경제를 생각하는 모임)’는 금융감독위 부위원장(윤원배 숙명여대 교수), 한국개발연구원장(이진순 숭실대 교수), 산업연구원장(이선 경희대 교수) 등 경제팀 외곽에 머물렀다. 경제팀 핵심부에 진입한 이는 김태동 경제수석뿐이었다. DJ는 김 수석마저 정부 출범 석 달 만에 강봉균 정책기획수석과 자리를 맞바꿔 버렸다. 학자 출신인 김 수석이 금리 정책 등에서 경제장관들과 계속 부딪친다는 것이 이유였다. 팀워크를 위해 아끼는 선수를 스타팅 멤버에서 뺀 셈이다.

DJ는 시장의 신뢰를 얻는 데도 신경을 많이 썼다. 외국 투자자들의 평가가 한국 경제의 목줄을 쥐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98년 8월 정리해고 문제로 노사가 정면 충돌로 치닫던 현대차 파업 사태를 노무현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가 중재해 해결했을 때다. DJ는 칭찬 대신 “정치권의 지나친 개입은 유감으로, 시정돼야 할 것”이라며 질책했다. 심중이야 어떻든 “정치권 개입으로 정리해고가 사실상 저지된 나쁜 선례”라는 외국 투자자들의 비판을 의식해 내놓은 메시지였다.

사실 DJ의 개혁은 IMF 구제금융에 따라 어쩔 수 없었던 ‘주어진 개혁’이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공공부문 개혁 등 중간에 그만두거나 흐지부지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단기간에 이뤄낸 외환위기 극복은 국민에게 큰 자부심과 자신감을 안겼다. DJ는 측근인 박지원 의원에게 “좌우간 나는 국민의 덕택으로 성공했고 국민의 힘을 잘 활용해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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