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윤호의 시장 헤집기]‘가짜 신용’에 멍드는 시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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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35면

지갑 속을 들여다보자. 요즘 같은 세상, 만원짜리 지폐 몇 장만 들어 있어도 뿌듯하다. 그런데 내 지갑 속의 돈이 모두 가짜라면? 아니, 내 돈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돈도 가짜라면? 밥을 사먹을 수도, 물건을 사고팔 수도 없다. 서로 못 믿기 때문이다.
오늘날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위조지폐가 가끔 있긴 하지만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을 온통 가짜라고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은행 총재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지 않은가.

그런데 16세기 유럽엔 정말 가짜 돈이 많았다고 한다. 상품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화폐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던 때였다. 당시 시장에는 몇몇 나라의 서로 다른 돈이 동시에 유통됐다. 국가는 지금처럼 조폐권을 장악하지도 못했다. 국왕뿐 아니라 유력한 지방 영주도 조폐소를 보유하고 있었다. 지방 조폐소는 민간인이 하청을 받아 운영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같은 나라 돈이라도 어느 지역, 어느 조폐소에서 만들었느냐에 따라 금·은의 함량이 제각각이었다. 여기에 이슬람의 금화와 은화까지 쏟아져 들어왔으니 돈의 유통질서가 매우 어지러웠던 것이다.

이에 따라 상인과 환전상들은 상대방의 돈이 진짜인지, 금과 은의 함량은 적절한지, 혹시 겉은 금화인데 속은 구리가 아닌지 검사해야 했다. 특히 조폐소는 솜씨 좋은 시금 기술자 없이는 돌아가지 않았다. 중세 수학 교과서엔 화폐 주조와 관련한 응용문제가 많이 나왔다고 하니 시금 기술자에 대한 수요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중세 유럽에서 이 분야의 선구자로는 독일의 라자루스 에르커가 유명하다. 보헤미아 지방에서 시금 감독관으로 일하던 그는 1574년 『광석과 시금』이라는 책을 펴냈다. 여기에서 그는 “시금의 핵심은 화폐의 진위를 알아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책은 분석화학 역사상 최초의 매뉴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중세에선 보기 드물게 정량적 분석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애매하고 추상적이고, 때로는 신비스럽기도 한 중세 연금술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에르커와 같은 현장 기술자들의 노력 덕에 미량의 금속을 측정하는 기술이 급속히 발전했다. 혼란스러웠던 도량형도 정비됐다. 금속을 다루는 공법도 속속 개발됐다. 그 결과 화폐는 더욱 정교하고 정확하게 만들어졌다. 이렇게 품질이 개선된 돈이 유럽 각지에 유통되면서 무역과 상업 발전의 기반이 됐다.

역사적으로 가짜 돈을 걸러내려는 줄기찬 노력은 각자 손해를 안 보겠다는 뜻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돈이 잘 돌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요즘은 진짜 돈도 잘 돌지 않는다. 돈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못 믿어서다. 누가 쓰러질지 모르는데 돈을 주고받을 수 없다는 분위기다. 옥석을 가려주던 중세 시금 기술자들의 역할을 누군가 해줘야 하는데 그럴 만한 곳이 없다. 다들 ‘현찰이 왕’이라며 돈을 움켜쥐고만 있으려 한다. 불안과 불신의 태풍이 잠잠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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