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과 주말을] 다양한 학문들의 짝짓기 ‘지적 이종교배’ 현주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지식의 대융합
이인식 지음, 고즈윈, 472쪽, 1만9800원

 요즘이야 휴대용 내비게이션까지 등장했으니 쓰임새가 예전만 못하지만 지도와 나침반은 참으로 유용했다. 자신이 어디쯤 와 있는지, 어느 길로 가야 좋은지를 알 수 있어서였다. 학문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눈부시게 변해가는 지식의 흐름에 발 맞추어 어떤 학문이 어느 만큼 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지도’가 있다면 진학 등 진로를 결정할 때 든든할 것이다.

이 책은 그 같은 구실을 하는 데 맞춤이다. 학제간 연구를 넘어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어우러지는 ‘통섭’이 새로운 학문 경향으로 등장한 21세기에 학문 지형도를 한눈에 보여준다. 지은이는 우리나라 과학칼럼니스트 1세대로 20년 넘게 쉽고 흥미로운 글을 통해 과학대중화에 앞장서 온 전문가여서 신뢰가 간다.

예를 들어 경제학이 다채로운 변신을 보자. 경제학과 심리학의 만남은 ‘행동주의 경제학’을 낳았다.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1979년 『프로스펙트 이론:리스크 하에서의 의사결정』이란 논문을 발표한 것이 시초란다. 행동경제학은 주류 경제학의 대전제인 ‘합리적 인간’을 부인한다는 점에서 경제학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왔고 카너먼은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첨단물리학의 복잡성 이론을 접목한 ‘복잡계 경제학’도 등장했다. 96년 윌리엄 브라이언 아더가 착안했는데 기술이 VTR시장에서 기술이 앞선 베타 방식이 뒤떨어진 VHS방식 제품에 밀린 이유를 수확체증의 원리로 설명하는 등 이론적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요즘 한창 각광받는 ‘웹2.0의 경제학’도 지적 이종교배(異種交配)의 산물이다. 캐나다의 돈 탭스코트가 제창한 것으로 수많은 네티즌들의 자발적 협업을 정보화시대의 새로운 경제현상으로 주목해 연구하는 분야다. 다윈의 진화론의 관점에서 경제현상을 분석하려는 ‘진화경제학’도 소개한다. 82년 미국의 리처드 넬슨과 시드니 윈터가 『경제 변화와 진화 이론』이란 기념비적 저서를 내면서 시장에도 자연선택이론이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책은 이처럼 인지과학, 뇌 과학, 진화론, 비선형세계, GNR(유전공학·나노 기술·로봇공학)을 키워드로 하는 5부로 나눠 다양한 학문 융합 현상을 보여준다. 물론 여기에는 아직 독자적 패러다임을 갖추지 못하거나 기존 이론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신생학문이라 부르기 어려운 분야도 소개된다. 또 워낙 방대한 분야를 다루다 보니 더러는 단편적 소개에 그쳐 대항목 사전에 가깝다는 인상도 준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관련문헌을 충실히 수록하는 등 ‘지식융합’의 현주소를 보여주려 애쓴 흔적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김성희 고려대 초빙교수·언론학 jaejae@korea.ac.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