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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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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요즘 문화계를 통틀어 가장 주목받는 이는 단연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1758~?)이다. 그를 모델로 한 팩션 소설 『바람의 화원』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원작을 드라마로 옮긴 SBS ‘바람의 화원’이 인기리에 방송 중이다. 다음 달에는 영화 ‘미인도’가 가세한다. 신윤복의 ‘미인도’ 등을 전시한 간송미술관의 특별전에는 수십만 인파가 몰렸다.

신윤복이 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른 것은 그의 생애가 갖는 파격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매력 때문이다. 그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전해지는 기록이 거의 없다. 저속한 그림을 즐겨 그리다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정도다. 정말 화원이었는지도 불분명하다. 그러나 기방 풍경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소재를 즐겨 그렸고, 그것만으로도 팩션에 더할 수 없이 매력적인 소재다.

‘바람의 화원’은 그를 아예 남장 여자로 설정하고 스승인 단원 김홍도와의 사이에 동성애적 긴장감을 넣었다. 두 사람의 그림을 통해 서민의 생활상을 보고 싶어 한 정조가 그들을 후원하고 화제를 주었다는 설정도 곁들인다. 물론 신윤복은 호가 있으니 당연히 남자고, 화풍에서 동시대 선배인 단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게 정설이다. 또 다른 팩션소설 ‘색, 샤라쿠’는 신윤복을 일본 천재화가 도슈사이 샤라쿠로 설정했다.

신윤복 그림이 가지는 현대성도 주목받고 있다. 세련된 필치와 담대한 색의 사용으로 쾌락과 성애, 여인들의 억압된 성적 욕망 등을 담아낸 섹슈얼리티의 화가라는 점이 눈길을 끄는 것이다. 해학적인 서민생활을 담은 단원의 풍속화가 서민성으로 일찍이 호평받았다면, 관능과 에로티시즘에 호소하는 신윤복의 그림은 개인과 욕망을 중시하는 요즘 관객들에 와서 뒤늦게 발견된 셈이다. 실제 신윤복은 대담한 춘화로도 유명하다.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이 그린 낯뜨거운 그림까지 호쾌히 받아들이는 군왕은 바로 정조다. 정조 시대라면 중국 산수화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창적 화풍의 진경산수화가 시작되던 시기다. 김헌선 경기대 교수는 “금강산 기행을 통해 자연에 대한 재인식이 이뤄진 조선 후기, 성에 대한 재인식과 예술적 형상화도 시작됐다”며 “이것이 우리 회화사에서 춘화·풍속화·진경산수화가 동시에 등장한 배경이고, 공통점은 주체에 대한 인식”이라고 썼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